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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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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월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73회 작성일 2008-10-2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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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

                                                            이월란



기억의 수레가 덜컹 나를 떠밀어, 짚어 본
창백한 과거 속에서 날뛰는 슬픈 짐승들의 크로키
하얀 도화지 위로 I-80번 도로를 타고 해뜨는 동쪽으로
어이딸 국경을 넘어간 아이
편도로 이어진 질긴 탯줄을 목에 감고도 넌 행복하니
히든카드는 늘 형편없는 패였음에도
삶의 데생은 흉상 가득 맹목의 전이가 시도되고 있지
팜므파탈의 잔상으로 서로를 찍어대며
흐릿한 화상도에 늘 미간을 찌푸렸어도
운명의 학정 앞에 우리, 이제 풀잎같은 민중으로 눕자
나란히 가엾게 눕자
두 살 먹은 너의 뺨을 때린 후, 내내
그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세탁기 위에 앉아 웃고 있는
너의 사진을 볼 때마다 너의 뺨을 때렸지
붉은 원피스보다 더 붉어지던 너와 나의 두 뺨
집착의 해부도에 코를 박고도
우리, 이별의 원근법을 해독해 낼 수 있을까
목발 짚은 영혼을 부축하며
서로의 눈동자에 새긴 영원한 잔영 속에
당의정같은 시간의 껍질을 벗기면
입에 쓴 환약같은 기억 한 알
나의 치부가 생경히 피어난 설익은 열매였어, 넌
열 아홉 해의 신음이 빚어낸, 지금도 이가 시린 과육
에미 몰래 너만의 강을 건너온, 넌
내가 써 놓은 가장 난해한 시
통역되지 못하는 언어의 강변을 돌고 돌아
무통분만의 시대에 나는, 입양된 너의 생모야
물엽맥처럼 뻗친 하늘빛 정분으로
진잎들이 골목마다 붉은 눈을 뿌려대는 이 가을에도
가슴 속, 영원히 닫히지 않는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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