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오시는 방법(-클릭-) 회원가입은 이곳으로 클릭++^^ 시작페이지로 이름 제목 내용

환영 합니다.  등단작가이시면 빈여백 동인이 가능 합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매번 로고인 할 필요 없습니다.

시한폭탄

페이지 정보

작성자 :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555회 작성일 2006-09-16 10:25

본문

(단편) 시한폭탄
신외숙


"그런 자식들은 모두 시한폭탄 매달아서 공중 폭파 시켜야 해, 아님 몽땅 유황불
에 태워버리던가."
희정은 핸드폰을 받자마자 냅다 소릴 질렀다. 길 가던 행인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주시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자 그만 핸드폰을 땅에 떨어
뜨리고 말았다.
어휴 쪽팔려.

대학을 중퇴한 뒤 눈높이를 낮추고 낮춰서 취직한 직장이었다. 중소기업에 취직
했는데 육 개월도 안 돼 부도를 만나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밀
린 월급도 못 받고 길거리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울분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
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술에 억수로 취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낯선 여관이었다. 방에 너저분한 휴지조각이 가득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처음 보는 낯선 공간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삐걱거리는 침
대가 간밤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득 하복부에서 진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천
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봉변도 그런 봉변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
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분명 꿈이거나 아님 다른 사람
의 이야기일 거야. 아무리 재수가 없어도 그렇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러자 또다시 하복부에서 진한 통증이 전해지면서 비
로소 현실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병신. 머저리. 짱구. 저능아. 사이코.

너 도대체 사람이냐, 도대체 살아 있는 생물체라고 할 수 있냐? 그녀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욕설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자학과 모멸이 몸과 정신을 훑고
지나갔다.

간밤의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소용없었다. 체격이 우람한 남자와 술잔을 마주
잡은 것까진 생각나는데 그 이후론 통 기억이 없다. 아! 남자들의 속삭임이 들렸던
것도 같다. 몸이 어딘가에 곤두박질치면서 무수한 매질을 당했던 것도 같다. 아! 술
잔을 건네던 남자의 손가락에 초록색 반지가 껴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정
확한 건 아니다.

당시 너무 술에 취했었고 눈앞이 가물가물했었으니까. 그 이외의 기억은 통 떠오르
지 않는다. 술에 취했었는지 아님 순간적으로 마취를 당했었는지 기억에서 끊겨져
나갔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이없는 실수로 인한 강간?
강간이 실수였다면 누구의 실수인가. 술을 마신 여자의 실수? 아님 여자를 짓밟
기 위한 남자의 의도적인 실수?

갑자기 책임소재에 시달리자 그녀는 상실감과 박탈감이 휘몰아치면서 피가 역류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하루아침에 망가진 정신과 육체의 순결을 어떻게 보상받아
야 한단 말인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아! 도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어쩌다가 어쩌다가……. 도대체 하나님
이 계신다면 왜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악재를 만나게 한 걸까. 안 되면 조상 탓이
라고 그녀는 일이 꼬일 때마다 신을 원망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그런 놈들을 가만두면 안 되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서 죽
거나 불로 태워버려야 할 텐데. 그녀는 기막힌 울음을 쏟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
건 다름 아닌 그 상황을 침묵하고 방관한 신(神)에 대한 복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발끝에 채이는 게 있었다. 일회용 라이터였다. 흰 바탕에 청
기와 레스토랑이라고 써 있었다. 그녀는 그걸 조심스럽게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어
쩌면 이게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오는데 여관 조바가 명함 한 장
을 내밀었다. 의아해 하는 그녀를 보더니 조바가 말했다.

"다음번에도 또 찾아 주십시오 잘 모시겠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건물 상가를 몇 번인가 지나고 전철역에 이를 때였다. 가방을
뒤지는데 지갑이 없었다. 밤새 도둑 맞은 것이다.

미친년.

자조 섞인 욕설이 튀어나오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집에 갈 차비
가 없자 캐리우먼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에게 차비를 구걸했다.

"저 차비 좀…… 900원이면 돼요."

그러나 여자는 들은 척도 않고 외면하고는 개찰구 쪽으로 빠져나갔다. 찬바람이
부는데 순간 모멸감과 수치감이 그녀의 의식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시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와 중년남자에게 말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 속에 파묻혀 전철을 무임 승차했다. 전철이 각 역을
통과할 때마다 그녀는 공포와 수치로 숨죽여 울었다. 간밤에 일어난 일만 해도 복
장 터져 죽을 노릇인데 돈까지 잃어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기막힐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분노와 허탈감으로 그녀는 달리는 전철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윽고
전철이 목적지에 닿았다. 전철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그녀는 저절로 사람들 속에 파
묻혔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표찰구 향해 구름 떼같이 몰려들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주문을 외웠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간이 오
그라 붙는 것 같았다. 어떡하든 무사히 전철역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표찰구 앞
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체하다가 얼른 밑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죽
을힘을 다해 뛰어갔다. 뒤에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 소
리를 내며 무한정 뛰더니 곧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전철 계단을 뛰어 오르는데 길가에 웅크리고 있는 낮은 짐승이 보였다. 거적대기
같은 옷가지를 뒤집어쓰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도저히 사람 형상이 아니었다. 활처럼 휘어진 등에다
주름진 얼굴이 저승 사자 같았다. 노인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
다. 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짧은 신음이 나왔다.

"아저씨 누군가 꼭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꼭 죽여주세요 대가는 얼마든지
할께요."

여자가 인터넷에서 만난 살인청부업자에게 다가가 은밀한 거래를 한다.
킬러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고 나서 대가를 받는다. 완전범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은 극비에 진행된다.

살해당한 시체는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돈으로 원한을 갚아버린 여자
는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킬러들의 수다'의 한 장면
이다.

그녀는 한때 킬러를 고용하고 싶은 생각에 정신없이 뒷골목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킬러는 그녀를 만나 주지도 않았고 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너무
엄청난 대가를 요구해 포기하고 말았다.

어떡하든 놈을 찾아야 한다. 꼭 찾아내서 처치해야 한다. 그런 인간은 살아야 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 그런데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눈에 보이기만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일 텐데 안타까운 건 얼굴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이처럼
분통 터질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죽이는 방법과 날짜까지 다 생각해 두었는데 살해 대상이 안 보이는 것이다. 도
대체 남산 아래 김서방 찾기지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때 그녀의 손안에 문득 잡
히는 게 있었다. 그건 여관방에서 주운 일회용 라이터였다. 그녀는 라이터에 써있는
전화번호를 마음속에 기억해 놓고 천천히 공중전화 박스로 걸어갔다.

청기와 레스토랑은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복개
된 청계천은 도심 속의 또다른 풍경화였다. 맑은 물줄기가 우뚝 솟은 빌딩 사이를
뚫고 흘렀다.

신축건물 2층에 자리한 청기와 레스토랑은 고급스런 분위기가 가득했다. 자주색 카
펫에 실내 분위기가 여느 레스토랑과 다르다 싶었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이
생음악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서빙하는 직원들도 모두 정장을 했고 잘 훈련된 매너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여자 종업원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녀는 실내를 천천히 둘러보다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눈길이 섬광같이 빛났다. 매서우면서 잔인한 미소가
남자의 얼굴 전체에 흘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남자는 이쪽에 대해 강한 경계심
을 나타냈다. 체격이 우람하고 격투기 선수처럼 근육질의 인상이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경호원 같았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놈들은 내 얼굴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
나타난 걸 알면 또다시 어떤 행동을 취할지도 모른다. 공포가 일시에 몸 전체로 퍼
져갔다.

그녀는 허둥대며 레스토랑을 빠져 나와 길거리로 내달았다. 차도는 수많은 차량으
로 뒤엉켜 아수라장을 일흐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이
켜진 119 구급대가 환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핏자국이 흥건했다. 범퍼가 찌그러져 휴지처럼 변해버린 승용차와
처참하게 나뒹굴어진 오토바이가 끔찍한 사고의 현장을 말해주고 있었다. 차창 밖
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운전자들은 신호등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
간 힘껏 엑셀을 밟았다.



몸 고생. 마음 고생. 돈 고생.

가지 가지 수치와 모욕을 참아가면서 돈벌이를 하던 어머니의 한스런 말이었다.
술주정뱅이에다 생활무능력자인 남편을 대신해 파출부와 식당 종업원, 행상을 하던
어머니는 나이 오십도 되기 전에 할머니란 소리를 들었다.

몸 고생에다 원한까지 사무친 어머니는 뼈가 망가져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을 정
도로 온몸이 기력을 다하고만 것이다. 얼굴은 칼주름이 잡혀 끔찍하게 늙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런 비운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딸이라는 구실로 사랑은커녕 구박과 천대를 당한 어머니는 일찍부터
뼈가 약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은 구경도 못했다고 한다. 아침도 못 먹
고 집에서 쫓겨나 학교에 가면 왕따를 당하고 점심 시간이면 다른 친구들이 밥 먹
는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침만 꼴까닥 삼켰다고 한다.

나도 언젠간 저애들처럼 맛있는 밥을 실컷 먹어보리라.

그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봄이면 못 먹어서 얼굴이 버짐이 피고 피골
이 상접하도록 말라서 미이라 같았다. 그런데 희한한 건 못 먹어 쾡해진 눈에다 배
만 불룩한 것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기아선상에서 시달리는 어린아이처럼. 올챙이처
럼 불룩한 배를 아이들은 놀리고 또 놀렸다.

올챙이 올챙이 개구리 눈에다 배는 올챙이래요.

굶고 멸시 당하고 어린 나이에 무릎 관절이 온 어머니는 수시로 자살을 생각했
다. 그때 나이가 일곱 살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입학한 중학교에서는 남에게 얻은
교복을 육 개월 입었을 때 자퇴하고 말았다.

쓰잘데 없는 딸년 중학교 공부시킬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외할머니의 병고였다. 일평생 폐결핵을 앓은 외할머니는 피를 동이를 쏟으며 날마
다 죽어갔다.

외할아버지는 첩살림에 미쳐 날뛰고 어린 동생은 못 먹고 병들어 일찍 세상을 떠
났다. 어린 동생을 안고 우는 딸을 향해 외할아버지는 발길질과 주먹을 내질렀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외할머니는 한스런 운명을 다했다.

어린 자식 일찍 보내고 피눈물 맺힌 딸의 가슴을 외면한 채 혼자 스스로 눈을 감았
다. 몸부림치며 우는 어머니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이웃에 있는 교인들이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 타시고……."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교인들은 한스런 삶을 살다간 어머니를 생각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소문에 이
끌려 할 수없이 발걸음을 내민 외할아버지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재수 없는 여편네 죽어서도 사람 성가시게 하는구먼."

그때 교인들 중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아녀 사람이…… 저 눈빛 좀 봐여, 꼭 마귀 새끼 같구먼."

그는 구석에 쓰러져 우는 딸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말했다.

"이 망할 년이 왜 울고 지랄하는 것이냐 이 경을 칠 년아."

사람들은 나이 어린 첩에게 미쳐 날뛰는 그를 짐승이라 표현했다. 부모 없는 불
쌍한 여자애를 강제로 겁탈한 뒤 애까지 배게 하고는 또 역시 구박과 천대를 일삼
았다. 오갈 데 없는 처지를 이용해 마음껏 농락하고 학대한 것이다.

학대를 견디다 못한 여자는 만삭이 다 된 몸으로 가출을 했다. 간단한 옷가지와
꿍쳐 놓은 돈을 가지고 한밤중에 열차를 타고 만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자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본가로 찾아와 어린 딸에게 살
인적인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네 년이 꼬여냈지 틀림없이 내년 짓이어."

귀신이 덧씌웠는지 그는 손에 낫을 쥐고 있었다. 그것을 휘둘러 광기를 나타내는
동안 어머니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주리고 아픈 배를 감싸 쥐고 이웃집으로
피신한 것이다. 밤새 광기에 미쳐 날뛰던 외할아버지는 도망 간 첩을 찾기 위해 행
방을 감췄다고 한다.

"타고 난 팔자는 어쩔 수 없는 거이다. 될성부른 입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부모
잘 만나는 게 젤 큰 복이다."

어머니는 입만 열면 부모 복 남편 복 하다가 끝에 가서는 자식 덕 운운했다.

"젤로 환장하겠는 건 만나는 인간마다 꼭 마귀 새끼인 거라, 난 평생 살면서 남에
게 해꼬지 한번 한 적 없는데 웬놈의 인간들이 나만 보면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것이여, 세상에 젤로 무서운 것이 사람인 겨, 아암 사람이 제일 무섭고 말고."

사람만큼 무서운 건 없단다. 그게 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었다. 정신
이 만신창이가 된 어머니는 독이 오를 때마다 외할아버지를 악담했다.

"그 노인네 죽어서도 좋은 데 못 갔을 거다. 일평생 못된 짓만 일삼고 지옥을 가
도 맨 하층 지옥을 갔을 거다. 제 마누라 잡아먹고 어린 자식 생으로 잡아먹은 것
도 모자라 평생 딸년 가슴에 한 맺게 하고 남의 집 귀한 딸까지 망쳐 놨으니 지옥
의 사자들이 제일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가정의 불운에 지친 어머니는 열 다섯 어린 나이에 공장에 들어가면서 더 큰 고
생을 했다. 돈 한푼 벌기 위해 여린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데 온갖 악한 인심이 다
모여들었다. 쏟아지는 멸시와 수모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일했다. 남자
공원들은 지날 때마다 어머니의 궁둥이를 발로 걷어찼다. 보호자가 없다는 건 세상
에서 가장 큰 슬픔이었다.

또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학대에 길들여진 어머니는 늘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영혼은 잠시도 집중할 수 없었다. 판단력과
분별력을 상실한 것이다.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로 지내면서 무시로 상처에 노출되
었다.

상처란 영혼에 따귀를 맞는 것이다.
따귀를 맞는다는 것은 수치심을 유발하고 모욕감과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
미 그 상처에 오염된 마음은 마지막으로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마음이 희노애
락의 상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한동안 무인도에 가 살고 싶다고 했
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지옥이라고 했다. 반복되는 악재와 환난에 노이로제
증상마저 띄었다.

"사람이 젤로 무서운 것이다. 조심 또 조심할 게 사람인 것이다. 절대 사람을 믿
어선 안 된다. 알겄지."

듣기 싫도록 반복하는 그 말이 그녀의 귀엔 공해처럼 들렸었다.

"제발 너만큼은 에밀 닮으면 안 되는데."

살의는 의식에 투입된 독극물이다. 독극물은 인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죽음
에 가속도를 붙이면서 점점 현실화된다. 그 살의는 구체적인 대상도 목표도 없이
점점 그녀의 의식을 좀먹어 갔다.

어떤 놈이든 한번 걸려만 봐라. 찢어 죽이든 태워 죽이든 잔인하게 죽여 줄 테다.
심장 혈관이 터져 피가 온통 내부를 적시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소음총을 구입해 항상 가지고 다니고 싶
었다. 그랬다가 기회가 오면 느닷없이 총을 꺼내 단 한방에 놈을 죽여버리는 것이
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놈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 놓
고 두고두고 보면 좋겠지만 그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랬다가 철창행 하는 건 시간
문제일 테니까. 그나저나 소음총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소문에는 부산에 가면 무
기를 비밀리에 구입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고 하는데 그거야 중간책이 있을 때의
문제다.

인터넷 상으로 은밀히 거래가 오간다는 소문도 들은 바 있지만 그것 역시 신뢰에
문제가 있다. 어쨌든 범행도구로는 그것 이상 좋은 건 없다. 우선 소리가 안 나니
죽이고 나서도 신속히 대피할 수 있고 증거가 남을 염려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물
건을 구입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차선책으로 독극물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실패의 확률이 높다. 만일 놈이
살아나서 입을 나불댄다면 자신이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기타 다른 무기도 떠올릴
수 있겠으나 가장 안심할만한 건 소음총이다. 소음총을 구해야 한다. 그것만 손에
쥔다면 목표대로 나쁜 놈들만 골라 차례대로 죽일 수 있다.

그녀는 우선 살해 대상을 정하기로 했다. 죽이고 나서도 결코 후회가 없을 가장
나쁜 놈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전혀 살 가치가 없는 놈이어야 한다. 그래야 죽이고
나서도 후회가 없다. 그 대상에서 조직 폭력배는 제외하기로 했다. 그것은 공권력이
따라주어야 한다.

일개 킬러로는 어림도 없다. 하긴 킬러도 그들 중의 하나일 테니까. 또 공권력의 힘
이 미치지 못하는 이단 사이비 세력도 제외하기로 했다. 그건 종교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자기네 교파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교인들을 이단의 마수에 넘겨버린 종교지도자
들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교인들이 이단이라는 치외법권(?) 지대
에 넘어가도록 방치함으로 직무유기했다. 한번 이단의 사슬에 매이면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인다.

그들은 진리를 악용하여 강간 폭력 고문과 죽음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한다. 한마
디로 무법천지가 그들의 무대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해악은 종교적인 관할에 맡
겨야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종교지도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즉 개인적인 원한에 국한한다는
뜻이다. 개인을 괴롭히는 악마 같은 존재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잔인하고 악독한 놈들, 살면서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놈들, 결코 살려 두
어서는 안 되는 놈들의 명단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놈들의 리스트를 작성한 다음
일을 착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로 인신매매범들을 들 수 있다. 멀쩡한 여자를 성의 노리개로 팔아버리는
놈들이 바로 그들이다. 여자의 몸과 정신을 짓밟고 유린한 놈들. 또 그보다 더한 놈
들로 제 친딸을 강간한 놈도 있다.

근친상간이 그것이다. 다 큰 딸은 말할 것도 없고 다섯 살밖에 안 된 딸을 강간
한 그런 놈들과 그런 딸을 제 친 아들과 함께 강간한 놈도 있다. 또 제 애인을 다
른 놈에게 양도한 놈도 있었다. 심지어 제 아내를 남의 아내와 맞바꾼 놈들도 있었
다. 딸의 친구를 아들과 함께 성폭행한 놈도 있었다. 특히 남의 집 귀한 어린 딸을
성폭행한 놈들은 처자와 함께 에이즈에 걸려 죽게 해야 한다.

먼 외국의 이야기지만 이제 네 살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아기들을 노동 현장에
팔아 버리는 극악무도한 놈들도 있다. 파키스탄이나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또 사춘기도 안 된 어린 딸을 사창가에 팔아먹는, 그런 풍습을 가진 나라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딸을 낳으면 좋아한단다. 거기까지 찾아가서 죽일 수는 없다. 그런
놈들은 외국에 있는 킬러를 동원해 죽여야 한다.

두 번째로 남의 돈을 삼켜버린 놈들이다. 평생동안 직장생활해서 모아 놓은 돈을
일순간에 집어삼킨 놈도 있었다. 사업한답시고 남의 돈 가로채고 일부러 부도수표
내고 잠적해버린 놈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놈들은 모두 가랑이를 찢어서 죽여야 한
다.

또 남의 가슴에 못 박고 피눈물나게 한 놈들도 있다. 여자와 어린 아이를 때리고
학대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은 모두 심장을 찢어 피를 흘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앞
서도 말했지만 사기꾼놈들도 모두 찾아내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

아아! 그런 놈들은 모두 시한폭탄 매달아서 공중 폭파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 방대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명단을 입수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무
슨 방법으로 그 명단을 확보한단 말인가.

인터넷에 들어가 아동 성폭력을 행한 놈들을 찾는 건 간단하지만 그 이외는 무슨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우선 그 기준도 확실치 않고 더구나 명단을 확보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함께 일할 동역자를 찾아야 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동역자가 생기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일을 할 때도 양분해서 하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또 만물보다 더 부패하고 표변하는 사람 마음을 어떻게 신뢰
한단 말인가. 만일의 사태로 배반한다면 그땐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그녀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살의가 꿈에서는 현실처럼 이루어졌다. 어린 날 보았
던 킬링필드라는 영화처럼 날마다 끔찍한 살해장면이 보였다. 전쟁영화보다 더 리
얼하고 실제적인 장면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졌다. 꿈속에서 그녀는 날마다 신무기를
발명했다. 컴퓨터에 입력된 명단을 확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30초도 걸리지 않
았다. 또 동역자가 무한정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모두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여자들
이었다.

직업도 천차만별이었다. 약제사를 비롯해 대학 교수와 연예인 방위산업체에 근무
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녀는 총포와 화약 전문가이기도 했다. 또 수의사와 여경 작
가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창가 포주였다. 그들은 모두 전문분야에서 이미
뛰어난 재량을 보이고 있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날 미래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너는 너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니? 천사의 속삭임처럼 그 음성은 날마다 그녀의
귓가에 미래라는 단어를 주입했다.
미래는 희망과 행복이야. 사람들은 그 미래를 찾기 위해 사는 거야.
희망과 행복이라구?
그래, 희망과 행복.
그렇지만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이기도 해.
그렇지.
현재의 행복이 곧 미래의 행복은 아니지만 현재의 불행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
의 행복은 불가능해. 나에겐 미래가 없어, 나는 늘 현재에 얽매여 있어. 나는 힘들
지만 죽을 수는 없어, 왜냐고? 나는 살아서 반드시 복수할 거야. 나를 망가뜨린 그
놈들을 반드시 찾아내서 이 면도칼로 갈가리 찢여서 죽일 거야.

밤길에 혼자 귀가하는 여자들만을 골라 성폭행하고 살해한 남자가 TV화면에 비
치고 있었다. 챙이 깊은 모자를 눌러 쓰고 수갑을 찬 손을 뒤로한 범인이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갔다. 뒤에서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중년여인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세상은 왜 저런 악독한 놈들에게 관용을 베푸는가. 왜 저런 놈들의 인권을 보호
해 주어야 하는가. 당장 저 놈의 모자를 벗기고 얼굴을 공개하라."

성난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저런 놈의 인권은 보호해 줄 필요가 없다. 얼굴과 함께 모든 죄상을 낱낱이 밝
혀라."

카메라가 아주 짧게 범인의 얼굴을 비추었다. 범인은 미소짓고 있었다. 소름 끼치
는 냉소였다.

"당장 저 놈의 얼굴을 공개하라. 그래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어린 아
이들도 저 놈의 얼굴을 보고 기억하게 하라."

시민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자 뚱뚱한 중년 여자가 손가락으로 범인
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이 내 딸을 죽였다. 남의 딸을 강간하고 죽인 저놈의 얼굴을 당장 공개하
라, 왜 법은 저런 가정파괴범에게 인권을 주장하는가."

여자의 얼굴을 카메라가 비추는 사이 경찰이 달려들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힘없는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에게 경찰은 과보호하고 있었다. 사
람들은 약자에게는 강하고 악인에게는 약하고 관대하다.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하
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하고 더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그렇게 인간 본성의 악은 악을 조장하고 부추긴다. 항간에는 '묻지마' 살인이 횡행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안정과 행복을 시샘한 나머지 아무 원한 관계도 없는 사
람을 무작정 살해하는 것이다.

범죄심리 분석학자들은 그것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충동적 살인이라고 규정
했다. 범인은 연쇄적으로 전국에 걸쳐 살인을 저질렀다.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여자들만을 골라 가족이 보는 가운데서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일말의 후
회나 가책도 없어 보였다. 인면수심이라더니 그가 곧 사탄의 하수인이었다.

사람들은 범행에 치를 떨었지만 곧 기억 속에서 없애 버렸다. 그런 기억은 오랫
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정신 건강상 해롭고 재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데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살인 사건
이 나도 범인이 잡히든 말든 신경 안 쓴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 부분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무관심
하다면 범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제 사건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세상은 강간치사범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약처럼 범죄를 부채질하고
중독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악감정이 치밀 때마다 그녀는 자학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번 낙심이 들어오니까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사람만 대하면 겁이 나면서 한없이 비굴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피해의식에 휩싸여 분노가 치솟았다.

피해의식이란 과거의 상처에 두려움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상처에다 상
상력을 덧붙여 상대에게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판단을 과거의 경험에 결
부시킴으로 감정체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피해의식은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는 반추 작용을 통해 새로운 사고(思考)를 형성
하며 다른 사람에게 또다른 상처와 피해를 끼친다. 즉 상처를 떠올림으로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
잡는 역할을 한다.

피해의식이 발생하면서 그녀는 절제를 잃어버렸다. 또 포기, 좌절, 체념에 익숙해
지면서 신경질 환자가 되어버렸다. 아무 때나 어디서나 욕설이 튀어나왔고 파괴적
인 감정으로 일관했다. 절제를 잃어버리면서 분노의 악감정이 그녀의 의식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덧 의지가 되어 그녀의 사고(思考)를 주장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남은 희미한 생존본능이었는지 모른다. 그 의지가 겨우 살아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자신에게 외쳤다.
이대론 죽을 순 없다…….
그 이면에는 분노가 살아서 살의(殺意)를 꿈꾸게 했다.

세상에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었다. 여기서 어떻게 더 이상 나빠지랴 싶을 정도
로 배짱도 생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미래를 몹시도 두려워했다. 미래는 더 이상
나빠지면 안 되는데…… 미래를 염려하는 건 최소한 자신에 대한 예의였다.

꿈에 그녀는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설 때마다 귓가에 아
우성이 들려왔다. 뒤에서 강력한 힘이 끌어당기며 공포심을 자아냈다. 쿠르릉거리며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녀는 더욱 발걸음을 빨리 하여 계단을 내
려섰다. 한참 내려가다 문득 비상구 쪽을 바라보았다.
지하 9층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
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데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
다. 희뿌연 먼지와 함께 돌조각이 쏟아졌다. 출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먼지
가 삽시간에 그녀의 눈앞을 가렸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그녀는 발걸음을 벽
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괴물체에 부딪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
렸을 때 그녀는 지축을 흔드는 듯한 소리에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던가. 그녀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영화를 찍듯 꿈은 환상
적이면서도 실제처럼 생생했다. 한번은 꿈에 처음 근무했던 직장의 상사를 만났다.
그가 한 남자를 소개했다. 남자는 체격이 우람하고 잘생긴 편이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골격이 운동선수처럼 보기 좋았다.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
를 청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마주 잡는 순간 남자가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아! 하고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뒤로 꺾였다.

다음 순간 남자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으핫핫핫 그날 밤도 그랬었지, 넌 천부적으로 요부 기질을 타고 난 여자야."

남자가 그녀를 안아 침대 위에 던졌다. 그녀는 침대 위에 널브러지면서 본능적으
로 몸을 활처럼 굽혔다. 남자가 짐승처럼 표효하며 달려들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며 핸드백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프라스틱 물병이 잡혔다. 뚜껑을 열자
마자 남자의 면상을 향해 집어던졌다.
으으으아악…….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얼굴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을 다쳤
는지 두 손으로 눈을 감싸더니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너! 너 이 썅년.

남자는 손을 더듬거려 무언가 찾는 눈치였다. 뭔가 손에 잡히기만 하면 그녀를
당장 물골낼 기세였다. 그녀는 남자에게 다가가 핸드백을 감아쥔 채 있는 힘을 다
해 내리쳤다. 그러나 남자는 끄덕도 않고 두 팔로 그녀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너! 너 이년 나쁜년.

남자는 팔을 풀지 않고 더욱 단단히 움켜잡았다.
아아! 이것 놔 못 놔.

그녀는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남자가 강한 힘으로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남자의 얼굴은 화상에 이지러져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앞
을 못 보는 걸로 보아 아마도 실명한 것 같았다.

아아! 내 눈 내 눈.

남자는 다시 고통이 전해오는지 두 손으로 눈을 감싸 쥐었다. 그 사이 그녀는 죽
을힘을 다해 그곳을 빠져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된 노릇이지 왜 출구가 안 보이는 거지.
공포가 가슴에 몰려오면서 그녀는 계단 위에서 그대로 넘어졌다. 몸이 천길 낭떠
러지로 곤두박질했다. 허공에서 맴을 돌던 몸이 끝없는 나락으로 처박혔다. 몸이 바
닥에 바스라지는 순간, 지옥인 모양이었다. 수많은 악귀들이 몸을 조각 낼 듯이 달
려들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녀는 여전히 비몽사몽간을 헤맨다.
현실감각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마저 떨어졌다. 판단력이 흐
릿해지면서 분별력에도 이상이 생겼다. 가장 괴로운 건 기억력에 혼동이 온 것이다.
현실 상황과 과거의 괴리현상이 벌어지면서 무분별한 언어가 쏟아졌다.

남자만 보면 치한으로 취급하면서 마구 비명을 지르며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 것이
다. 그런가하면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착각하며 계단을
수없이 뛰어 내려갔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일어나는 실수는 다반사였다.

헛말이 나오면서 그녀는 완전한 절망에 빠졌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단어와 입에
서 튀어나오는 단어가 정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상황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하는데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 증상이 심화됨에 따라 우울
증과 함께 자살 충동도 심해졌다.

그녀는 한밤중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울다가 가족들 몰래 집을 나섰다. 마지막 전철
을 타고 마포역으로 달려갔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 출구를 빠져 나오면 강바람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강 주변 건물에서 야광이 강물을 향해 내리쏟고 있었다. 빛이 검은 강물을 비추
고 차량은 무서운 속도로 여의도를 향해 질주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심정으로 강물과 차도를 번갈아 보았다. 강바람이 엄청난 위력으로 가슴에 다가왔
다. 강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귀청을 찢을 듯한 엄청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지금 뭐하는 거요, 여기서 빠져 죽으면 시체 건져내는 데만 드는 돈이 얼
만지나 아쇼, 자그만치 오백만 원이요 죽으려면 다른 데로 알아보쇼, 강물이 오염된
단 말요."

주변을 순회 중이던 경찰이었다. 그는 플래시를 그녀 얼굴 가까이 대고 나서 한
심하단 투로 말했다.

"죽을 용기가 있거든……."

경찰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장기기증이나 해두쇼."

그녀는 너무도 기가 막혀 멍하니 경찰을 바라보았다. 한강 철교 난간을 붙잡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이 하류를 향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밤섬에서는 새가 깃
들이고 있었다. 새들은 밤에도 자지 않고 먹이를 찾는구나. 하찮은 새들도…… 종족
보존을 위해 애를 쓰는구나. 그런데 나는…….

돌아서 걷는데 바로 옆에서 괴성이 터졌다.

"할아버지 여기서 잠들면 어떡해요? 여기서 잠들면 얼어죽습니다. 어서 집으로
가세요."

"아녀 난 여그가 좋아, 나 집 없어."

노인은 아예 난간 옆에서 자리를 깔고 누울 기세였다.

"아참! 노인네 고집도 차암, 댁이 어디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나, 집 없어 오래 전부터."

노인은 팔십은 넘어 보였다. 노인의 목에서 가랑거리며 쇳소리가 났다. 감기가 걸
렸는지 계속 쿨럭거리며 기침을 했다. 남루한 옷차림에 보퉁이를 든 모습이 오갈
데 없는 게 분명했다. 노인의 차림새가 모든 걸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여김 계심 어떡해요? 혹시……."

경찰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노인을 들쳐업었다. 아무래도 노인의 눈치가 수상
했다. 하긴 한밤중에 자정이 넘은 시각에 노인네 혼자 한강에 왔다면 뻔한 스토리
아닌가. 경찰이 노인을 업더니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가씨도 쓸데없는 생각말고 마음 고쳐 먹으슈. 죽을 용기 갖고 잘 살아보란 말
요 알겠소."

노인은 경찰의 등에 업히자마자 축 늘어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마음은 우주공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다. 마음 먹기에 따라 행 불
행은 물론 생사가 나뉘기도 한다. 마음은 물과 같다. 어떤 것을 담느냐에 따라 천국
과 지옥으로 갈린다. 분노와 미움, 슬픔을 담으면 지옥이요 용서와 사랑, 기쁨을 담
으면 천국으로 변한다. 그녀의 마음은 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과거의 결박된 끈
이 마음을 옥죄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때로는 좌절과 유혹으로 분노와 살의로 이어졌다.

꿈속에서 그녀는 검은 그림자에 의해 무한정 쫓기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정신
없이 뛰어 내려가다 그녀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처했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검은 그림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띄고 다가왔다. 그들은 양손에 날이 선
비수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올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그녀는 본
능적으로 손을 주머니 끝으로 가져갔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제제가 손에 잡혔다. 그녀는 몸을 약간 비트는 척하면서 그
물체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자를 향해 정신없이 쏘아댔다.
슝슝…… 슈우웅웅…….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은 그림자들을 하나 하나 쓰러뜨렸다. 소리는 정확하게 나
지 않았지만 총구에서는 불을 뿜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최신식 일제
소음총이었다. 살의를 만끽한 그녀는 총알이 다 소모되자 허탈한 듯 그 자리에 주
저앉았다. 말할 수 없는 피곤과 허무가 몰려왔다.

피에 물든 검은 그림자들은 죽음 이후에 더 가혹했다. 마치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
는 것처럼 공포심을 자아냈다.

귀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려는 살아 있는 자의 몸부림처럼 그림자는 그녀의 마음
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녀는 소음총을 바닥에 내팽개친 채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물병을 들고서 무언가를 수없이 삼켰다. 또다시 혼
곤한 잠이 쏟아졌다.

어느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손끝에 링거 줄이 잡혔다. 고개를 돌려 침대
옆을 보니 '절대안정'이란 팻말이 보였다. 링거에 수면제를 탔는지 자꾸만 잠이 왔
다. 잠결에 그녀는 무심코 들었다.
정신분열증 환자…….

그건 또다른 시한폭탄이었다. 분노와 살의가 계산된 시한폭탄이라면 정신분열증
은 인격파탄을 위한 극약처방이나 마찬가지다. 정신내부의 조화를 잃고 자폐 환각
망상 따위의 증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이곳에 누워 있는 걸까.
그녀가 눈을 떠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간호사가 다가왔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제가 왜 어쩌다 여기에 있는 거죠?"

"조금만 늦었더라도 큰일날 뻔했지 뭐예요 이만 하기 다행이에요."

무슨 말인지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제가 어땠었는데요?"

"기억 안 나세요?"

간호사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당분간 절대안정 취하시고요 음식은 죽만 드세요, 기분 내키신다고 이것 저것 마
구 드시면 안 돼요 위세척을 했거든요."

위세척?

점점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렇담 내가 죽기 위해 약이라도 먹었단 말인가. 다른
침대의 환자들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침대로
갔다. 환자명 아래 절대안정이란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병실
안에 휘몰아쳤다.

모두들 저승 길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들이로군. 그런데 난 도대체 어떻게 여기
까지 오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나 저나 오늘이 며칠이
지. 병실 밖으로 나와 대기실로 가 보았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4월이었다.
4월?

그녀는 순식간에 시간의 역류현상을 느꼈다. 4월 4월이라. 봄바람이 생각나면서
느닷없이 강물이 떠올랐다. 한밤중에 찾아갔던 마포대교 밑을 흐르던 검은 강
물…….

노인의 가랑거리던 기침소리도 떠올랐다.

난 집 없어, 오래 전부터 집 없었어.

기억의 휘몰아치는 번뇌 속에는 살의와 분노도 섞여 있었다. 전철 요금 단돈 900
원이 없어서 망신당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그녀는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 혼미를 거
듭하며 병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차장 옆으로 화단이 보였다. 생명이 따스한 햇
살 아래 움트는 모습이 보였다. 목련이 막 봉우리를 틔우고 있었다. 종족보존을 위
해 몸부림을 하는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다가가 풀잎을
만져 보았다.

새싹이 손끝에 잡혔다. 생명의 소리가 들렸다. 재생의 목소리가. 생존의 거룩한
움직임이 그녀 앞에서 묻어났다. 병실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무실 앞 환
자 대기소 앞에 TV가 보였다. 마침 뉴스가 진행 중이었다.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매우 격앙돼 있었다.

여자의 돈을 빼앗고 성폭행한 남자가 경찰에 끌려가면서 기자의 일문일답에 응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챙이 긴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이
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범행을 하였는가."

"지난해 초봄이었다."

"상대는 어떤 여자였는가?"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여자를 만났는데, 직장에서 막 쫓겨난 그녀와 술을 마시다
순간적으로 그만…… 여관에서 일을 치르고 집에 가려니까 차비가 없어서 지갑에까
지 손을 댔다. 한두 번 하다 보니 용기가 생겨 나도 모르게……."

형사가 몰려드는 기자를 몸으로 막아내며 범인을 보호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피해자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

남자가 기자가 들이댄 마이크를 수갑 찬 손으로 밀어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띄이는 게
있었다. 초록색 반지였다.

맞아 그 반지, 그날 내게 술잔을 건네던 그 손, 그 반지였어.

기억의 회로에 불이 켜지면서 그녀는 심장이 덜덜 떨렸다. 마음속에서 돌무더기
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청사 안으로 들어갔
다. 정신이 아득했다.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놈, 바로 그놈이다.

의식 속에 경종이 울리면서 정신이 무한정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의식속에
서 범인을 향해 수없이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범인의 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수없는 악귀들이 달려들어 범인을 향해 칼침을 꽃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말할 수
없는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마음을 묶고 있는 끈이 툭 떨어져 나가면서 그녀는 그
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몸과 마음의 회복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복수와 신(神)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표면상으론 그랬다. 퇴원 수속을 밟고 병실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복음성가가 들려왔다. 교인들이 환자 병 문안을 온 모양이었다. 곡조는 애
절한데 가사는 들을수록 마음에 와 닿았다.

「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유하네
고통 받는 자녀 붙드시니 주밖에 없네
주님은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사를 따라 부르며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마음 속
l깊은 곳에서 평강이 강물처럼 넘쳐나고 있었다.
퇴원을 해 집에 오니 못 보던 신발이 보였다.

하얀 남자 고무신이었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등이 굽은 노파가 벽을 향해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무어라 말하며 사정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 언제 왔니?"

"엄마 누구셔?"

"으 응 할아버지."

"할아버지라니? 나한테도 할아버지가 계셨어?"

"외 외할아버지."

"뭐?"

그녀는 망연자실 어머니의 눈빛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돌아누워 있던 노인이 자
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녀를 보더니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니가 희정이냐?"

"네 그런데요."

노인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외마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아니…….

언젠가 마포대교에서 보았던 노인네였다. 그러고 보니 전철 역사 앞에서 구걸을
하던 그 노인네였다.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세
상에서 처음 보는 부드럽고 따듯한 손이었다. 핏줄을 향한 애잔한 정이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뭉클한 것이 눈물과 함께 쏟아졌다.

"아가, 내가 니 할애비다. 처음 보제? 면목이 없구나."

노인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눈치였다.

"급할 때 써라, 용돈이다."

꼬깃꼬깃한 종이돈이 때에 찌들은 손에서 그녀에게 건네졌다.

"할아버지."

마음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미움과 분노, 격정과 슬픔이
눈물과 함께 소진되고 있었다.

"아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의 입가에서 드디어 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원한과 용서가 합치되면서 울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미안하구나, 지난 세월 동안 한순간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단다. 불쌍한 내 자식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면서도 죄인 된 심정으로 찾아 나설 수도
없고,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구나, 고맙다."

노인은 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머니는 아예 노인의 무릎에 엎
디어 울었다.

삶은 항상 시한폭탄이다. 그러나 용서의 제어장치가 있는 한 폭탄은 폭발하지 않
는다. 긍휼과 신(神)을 두려워하는 마음만 있다면 시한 폭탄은 언제든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며칠 후였다. 길거리를 지나는데
언젠가 병원에서 들었던 복음성가가 들려왔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가사 내용을 음
미하며 자신도 모르게 다짐했다.

언젠가 난 그런 사랑을 하리라.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 다른 사람의 영혼을 다치지 않는 안전하고 고결한 그
런 사랑을.

사람들이 발걸음을 일제히 한 방향으로 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팡파르가 울렸다.
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삐에로 복장을 한 젊은 남녀가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름도 모를 현악기를 어깨에 맨 외국인이 심
취한 듯 연주에 골몰하는 모습도 보였다.

맑은 물줄기를 타고 사람들이 도보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도 평화롭
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따라 무심코 발걸음을 옮기는데 눈에 들어오는
간판이 있었다.

청계천에 있는 청기와 레스토랑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 앞을 지나갔다. 과거
의 잔영이 두려움과 함께 살아나면서 당장이라도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나타날
것 같았다. 잊었던 피해의식이 분노와 함께 의식을 억눌렀다.

감정이 칼끝같이 예민해지는데 또다시 귓가에 복음성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육중한 체격을 한 남자 서넛이 레스토랑으로 걸어 올라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는 초록색 반지를 낀 남자도 섞여 있었다.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학발표 목록

Total 19건 1 페이지
문학발표 목록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9
복수 댓글+ 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83 2007-03-19
18
청계천 풍경화 댓글+ 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2 2007-02-26
17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56 2007-02-16
16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8 2006-12-15
15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77 2006-11-20
14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5 2006-11-16
13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4 2006-11-08
12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88 2006-11-01
1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55 2006-10-26
10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9 2006-10-20
9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3 2006-09-29
8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5 2006-09-29
열람중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6 2006-09-16
6
혼돈 댓글+ 1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9 2006-09-02
5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7 2006-08-21
게시물 검색
 
[02/26] 월간 시사문단…
[08/28] 토요일 베스트…
[07/03] 7월 1일 토…
[04/28] 5윌 신작시 …
[11/09] 2022년 1…
[08/08] 9월 신작 신…
[08/08] 9월 신작 신…
[06/29] -공개- 한국…
[06/10] 2022년 ◇…
[06/10] 2022년 ◇…
 
[12/28] 김영우 시인님…
[12/25] 시사문단 20…
[09/06] 이재록 시인 …
[08/08] 이번 생은 망…
[07/21] -이번 생은 …
 
월간 시사문단   정기간행물등록번호 마포,라00597   (03924)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4길 17 사보이시티디엠씨 821호   전화 02-720-9875/2987   오시는 방법(-클릭-)
도서출판 그림과책 / 책공장 / 고양시녹음스튜디오   (10500) 고양시 덕양구 백양로 65 동도센트리움 1105호   오시는 방법(-클릭-)   munhak@sisamundan.co.kr
계좌번호 087-034702-02-012  기업은행(손호/작가명 손근호) 정기구독안내(클릭) Copyright(c) 2000~2024 시사문단(그림과책).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