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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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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506회 작성일 2006-10-20 10:34

본문

(단편)

능내역

신외숙

어느 혹한의 겨울이었다. 팔당댐이 보이는 능내역에 내렸다. 강물이 꽁꽁 얼어 삭풍이 불고 있었다. 눈 쌓인 벌판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연기는 벌판을 더 허허롭게 했다.

은철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에 대고 불을 확 붙이는 순간 속에서 심하게 욕지기가 났다. 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도 해독이 안 되어 가슴속에 불을 지피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음식점으로 무작정 들어섰다. 술과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평일이라 낚시꾼이 없어서인지 안은 썰렁했다. 찬바람이 휘잉! 하고 창문을 두들겨댔다. 앞치마를 두른 주인 여자가 막 주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어서 오세요 뭘로 해드릴까요?”

추운 겨울 이 곳에 무슨 일로 왔을까 하는 호기심이 여자의 표정에서 역력히 묻어나고 있었다. 은철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켰다.

“소주 한병 하고 안주는 아무 거나 주쇼.”

은철은 쓰린 속을 다스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음식점 안은 썰렁하다 못해 한기가 맴돌았다. 설마 이 추운 겨울날 손님이 들랴하고 전혀 난방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은철이 손을 비비며 으스스 떨자 주인 여자가 석유 난로 하나를 들고 왔다. 70년대식 석유 난로였다. 그물망이 쳐진 곳으로 새빨갛게 불꽃이 피어올랐다. 언손을 녹이다 말고 은철은 문득 창 밖을 내다보았다.

시외버스가 삭풍을 가르고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도로 건너편 쪽으로 음식점 간판이 몇 보였다. 전통 한옥 모양에 민물 매운탕 전문이라고 쓴 팻말과 그 옆으로 시골집이란 간판이 보였다. 주변에 카센타와 모텔 건물도 보였다.

강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찬 기운이 바람과 뒤엉켜 계속 눈바람을 일으켰다.

갑자기 뭉클하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기억은 생각속에서 숨바꼭질하듯 그 형체가 불분명했다. 누군가 얼굴과 이름이 떠오를 듯도 한데 그러나 안개처럼 곧 사라지고 말았다.

기억속의 자아가 계속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아! 왜 낯선 고장은 감정을 타락하게 만드는가. 언젠가도 이와 비슷한 곳에서 몸과 마음이 고장났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뭉클뭉클 기억의 파편속에서 불길 같은 것이 확 솟아올랐던 것 같다.

그 불길 속에 휩싸여 정신이 테러당한 순간 그는 깊은 수렁에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차츰 무의식 세계속에 침몰되어갔다.

“손님 술하고 안주 나왔습니다.”

급하게 만든 듯 김치찌개가 소주와 함께 상 위에 놓였다. 은철은 급하게 소주를 따 입에 가져갔다. 찌르르 하고 속에서 신호가 왔다. 좀 작작 퍼 마셔라. 하고 속에서 항의성 경고가 들려왔다.

“세상에 불쌍한 건 여자지.”

어디선가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 말에 기울였다.

“나쁜 놈들은 모두 다 저 강물 속에 처박아야 한당게, 에휴 죽일놈들 같으니…….”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주방 쪽으로 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난 또. 그는 김치찌개를 입에 퍼올리다 말고 피식 웃었다. 그래 세상에 가장 불쌍한 게 여자지 그렇고 말고. 그제서야 기억속에 환한 불이 켜졌다.

뭐 눈에 뭐밖에 안 보인다고 그는 여자만 보면 나신을 먼저 떠올린 적이 있었다. 열 계집 마다 않는 남자 없다고 한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았다.

신라시대 진성여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색욕을 밝히기로 유명했다. 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늘 주지육림에 파묻혀 살았다. 궁안에는 서라벌에서 유명한 미소년들로 가득할 정도였다.

신하도 마음에 들면 언제든 여왕의 잠자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들이 여왕을 등에 업고 세도를 부린 건 불문가지다. 신라시대 여왕은 본남편을 셋까지 둘 수 있었는데 진성여왕에게는 각간 위홍이라는 남편이 있었다.

그는 여왕의 남편이기도 했지만 숙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진성여왕의 부왕인 경문왕의 동생이었다. 그가 왕의 남편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귀족 신분이기도 했지만 워낙 외모가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가 서라벌에 나타나면 어떤 여자든지 그를 따라가 잠을 잤다. 처녀가 됐든 유부녀가 됐든 고관대작의 부인이든 남의 집 하녀든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그를 보기만 하면 무작정 따라 나서는 것이다.

외모도 외모려니와 성적(性的) 매력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그런 그를 여왕은 끔찍이도 사랑했던 것 같다. 그가 죽자 여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했다. 그리고 죽은 그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그 위홍처럼 그에게도 여자가 꼬리연처럼 늘 따라붙었다. 마치 운명처럼.

외모가 워낙 출중한 때문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그의 주변은 여자가 들끓었다. 그만 나타났다 하면 어느샌가 여자들로 가득했다. 어릴 때부터 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그는 왕처럼 떠받들여졌다.

어쩌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서로 뒤질세라 여자애들이 알아서 갖다 주었다. 선물은 물론 일부러 가방을 들어주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로 경쟁까지 벌였다. 어떻게 하면 그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며 애태우는 여자애들도 많았다.

더구나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머리가 총명했다. 전교에서 수석을 다툴 만큼 공부도 잘했다. 별로 노력하지 않는데도 그랬다. 집안도 넉넉했고 그가 원하는 것은 언제든 손에 쥘 수 있었다.

대학도 최고 일류학부를 졸업했고 직장도 재벌기업 엘리뜨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어릴 때부터 순탄대로였다. 한번도 실패나 좌절을 모를 만큼 만사형통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언제나 여유작작 모든 이에게 친절했다.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필요도 없었다. 밤낮없이 끊임없이 달라붙는 게 여자인데도 그는 언제든 모든 여자에게 친절했다. 잘생긴 외모에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 보니 여자들은 착각을 밥먹 듯했다. 여자들은 그가 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툭하면 자기 환상에 빠졌다.

그러나 그 환상은 얼마 가지 않아 곧 깨졌다. 모든 여자들에게 고루고루 주어진 혜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왕이 신하에게 시혜를 베풀 듯 여자가 원하면 언제든 호텔로 향했다. 그렇게 그의 여성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건 그의 일상사였고 결혼 이후에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것에 대해 그는 후회감이나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아내 역시 어디엘 가도 빼어난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외모가 출중했다. 170cm에 가까운 늘씬한 키에 선한 눈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특히 다소곳하고 부드러운 성격은 생전 가야 짜증 한번 내는 일 없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때문일까. 아내는 외모만큼이나 인격도 훌륭했다. 불쌍한 사람 이나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언제든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길을 가다가도 장애인이나 걸인을 보면 눈물을 글썽이며 적선을 했다.

남편에게는 물론 시댁 식구들에게도 늘 고분고분해 현대판 현모양처라는 칭찬을 받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투도 예전 같지 않게 시비조로 변했다.

“열 여자 마다 않는 남자는 없다면서요?”

“어디서 무슨 소릴 들은 거야?”

그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말아요, 나도 한번 하면 하는 성격이라구요?”

그때 그는 아내에게서 매우 낯선 감정을 느꼈다. 아내는 평상시에도 감정 상할 만한 소리는 한번도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독이 오른 표정으로 다가와 그것도 위협적인 말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하다니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가. 그는 찔리는 구석이 많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믿었다.

“무슨 소린지 차근 차근 말해 봐.”

그는 태연을 가장한 채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항상 준비해둔 말이 있었다. 무조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앞으로 두고 보겠어요.”

“뭘 두고 보겠다는 거지?”

“당신의 속사람과 겉사람을요.”

속사람과 겉사람? 그 뜬금없는 단어에 그는 잠시 아연했다.

“점점 모를 소리만 하는군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어디 속시원히 말이나 들어보자구, 이거 답답해 환장하겠구만.”

아내는 표정이 냉랭해지더니 안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그리고 한달 동안이나 그를 무시하고 각방을 썼다. 식사 시간 때도 아예 고개를 돌려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디서 무슨 소릴 듣었는지 아내의 태도가 백팔십 도 달라진 것이다.

하긴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동안 속고 산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의 여성 편력을 뒤늦게 안 것 뿐이리라. 그게 결혼 전이 되었 건 이후가 됐건 이미 그 사실을 안 이상 이젠 어쩔 수 없다.

이제와서 아니라고 발뺌한다고 있던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실대로 고백하자니 그 또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설마 과거를 문제 삼아 이혼을 요구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결혼한 지 오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는 것 말고는 부족함이 없는 부부사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과거를 몰랐을 때의 일이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그토록 화려한 남편의 과거를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의 아내는 그야말로 순백 상태였다.

문란한 남녀 관계를 이해할 만큼 사고(思考)가 정리돼 있지 않다. 아니 그렇다 쳐도 그의 여성편력을 이해한다는 건 도저히 상식 밖의 일이다. 그중 어느 한가지만 알았다 해도 그 충격은 대단할 것이다.

차라리 까놓고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어쩔 셈이냐고 따지면 속시원할 텐데 아내는 두고만 보겠다는 속셈 같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집에만 들어서면 가시방석 같아 늘 좌불안석이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차라리 내가 먼저 확 불어 버려?

아니 아니지 그랬다 만일 잘못 부는 날에는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이 되고 만다. 차라리 버틸 때까지 버텨 보자. 언젠가 제 쪽에서 말이 있겠지.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회사에서 모처럼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스트레스도 풀 겸 신나게 놀다보니 열두 시가 넘어 귀가했다. 잠든 줄 알았는데 아내가 현관문을 열어 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어느 여자하고 마셨나요?”

“여자는 무슨, 오늘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직원들과 마셨지 정 못 믿겠으면 김대리에게 전화해서 알아 보라구.”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처럼 가져주는 관심이 고마워서였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십분도 안 돼 깨져버렸다. 그가 세수를 마치고 소파에 앉자 아내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 정부(情婦)가 몇이죠?”

“정부(情婦)?”

그는 생소한 단어를 흘리는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부라니? 이 여자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더 놀란 건 그 다음 말이었다.

“위선자 파렴치범 인간 쓰레기 난봉꾼 사탄의 자식.”

아내의 입에서 거침없이 악담이 튀어나왔다. 아내의 얼굴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다 알고 말았구나. 진홍색 찬란한 과거의 죄악이 그의 머리 뚜껑을 열고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는 잠시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아니 하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바람에 종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분명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다 당신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남편한테 하는 소리 맞아?”

“여기에 당신밖에 더 있어?”

반말이 튀어 나왔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듣는 반말이었다. 아내는 지금까지 쭉 경어를 써왔다. 그는 뒤통수를 센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설마설마 했는데 그동안 여자경력이 화려하시던군, 대학 시절 별명이 여자 킬러
였다구. 너의 목적은 오직 그거 하나였다며?”

아내는 침을 삼키고 나더니 말했다.

“넌 여자 정복하는 게 취미였다며?”

이미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더 이상 부정할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시인해 버리자.

“임신 중절 수술 시킨 여자만도 열 명이 넘는다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끔찍했던 과거의 현장이 또다시 리바이벌 되고 있었다.
“그건 다 당신 만나기 이전의 일이야, 난 당신과 결혼하고 나서 충실했잖아, 이미 다 지난 과거의 일이라구.”

“충실? 충실이라구 했어 지금?”

아내의 눈에서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충실의 의미가 뭔데? 넌 내가 안 보는 데서 다른 여자들한테도 충실했다며? 그게 바로 니가 여자 낚는 최선의 방법이라구 떠들고 다녔다며? 그리고 과거 과거 하는데 니가 그런다고 그 과거가 없어지냐,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이라구 넌 결혼하고 나서도 쭉 그랬다며?”

아내는 이미 모든 걸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다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 도대체 어디에 이런 지독한 면이 숨어 있었던 걸까.

“그동안 나 속이면서 산 재미가 어땠냐?”

어땠냐? 그 어감이 그를 긴장하게 했다. 사람이 달라져도 어쩌면 이렇게 백팔십도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그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아내의 태도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내는 평소의 교양있는 태도답게 조용히 일을 처리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내가 아닌 전혀 낯모르는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내 이상하다고 했지.”

뭐가? 그는 낙심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병원에 갔더니 세상에… 내가 내가… 성병에 걸렸다는 거야.”

아내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듯했다. 그는 가
슴이 아예 폭삭 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잠시 천장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거실 창가로 다가가더니 찻장 맨 아랫간에서 가위를 꺼냈다. 아내가 가위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명령조로 말했다.

“짤라 짤라서 버려.”

그가 어리둥절하자 아내는 가위를 도로 집어들고는 거울을 향해 냅다 내던져버렸다. 쨍그랑하고 거울이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어떻게 하든 아내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된 노릇인지 몸이 화석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아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는 이번에는 찻장을 열더니 양주병을 있는 대로 꺼내 바닥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거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술 냄새가 거실 가득 퍼지면서 그는 몽롱한 환상에 취했다. 파편 위로 알코올 향기가 운무처럼 피어올랐다. 그 파편 위에서 아내가 길길이 날뛰며 표효했다. 긴 머리칼을 흔들며 바닥에 주저앉아 마구 울부짖었다. 이성을 잃고 감정이 폭발하자 표효하는 짐승 같았다. 그는 아내에게 뭐라든 변명을 해야 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단어 하나 없었다.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여보.”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마디 하고는 집을 빠져 나왔다.

“다신 들어오지 마, 이 악마 자식아 이건 내 집이야.”

뒤통수에 대고 아내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그는 집 근처 여관에서 밤을 지새운 뒤 이튿날 새벽같이 출근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새를 고쳤는데 거울속에는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남자가 자신을 향해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복도를 지나자 뒤에서 얼짱 몸짱이라며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직원들이 뒤에서 따라오며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여직원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만나면 그날은 재수 좋은 날이라며 서로 자랑을 했다.

회식을 할 때도 그의 옆자리에 앉는 여직원은 며칠이 지나도록 황홀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러 그의 손길과 마주치기 위해 술잔을 건네는 여직원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중요한 계약 체결이 있을 때마다 그를 대동했다.

상대가 여자일 때는 그가 아예 계약 체결자로 나섰다. 그의 외모에 정신이 나간 여자가 순순히 도장을 찍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마침 중요한 미팅 건도 없고 해서 그는 일 처리가 끝나는 대로 회사 근처에 있는 사우나에서 몸을 푼 뒤 퇴근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일거리가 밀려드는 바람에 그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간신히 참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아내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경비실에 가방을 맡겨 두었으니 퇴근할 때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가방이라면 그건 가출하라는 뜻이다. 이미 단단히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하긴 아이도 없겠다. 헤어지기로 마음만 먹으면 찢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편이 부정이 밝혀졌다 해도 그렇지.

오 년이나 함께 살을 맞대고 산 부부관계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단칼에 무 베듯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적반하장식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내와는 직장 상사의 소개로 맺어진 사이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재원인 아가씨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보라는 권유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가 맺어진 인연이었다.

“이은철 과장에 비해 결코 손색없는 빼어난 미인일세.”

직장 상사가 말하는 아내의 배경은 대충 이러했다. 명문여대 미대 출신에다 집안이 아주 빵빵했다.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와 외가 쪽도 만만치 않았다. 강남에 있는 이름난 성형외과가 그녀의 외삼촌 것이었다.

외가 쪽으로는 주로 의사 교수가 많았다. 명예와 부를 겸비한 집안이었다. 더구나 아내는 그림에 몰두하느라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한 편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단박에 반한 눈치였다.

그의 외모가 워낙 출중한데다 매너와 능력 그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으니까. 아내는 첫눈에 보기에도 미인형이었다. 선한 눈빛에 허리가 한 주먹도 안 될만큼 가늘었다. 그를 보자마자 마음에 드는지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혹시나 퇴짜 맞으면 어쩌나 하고 근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마주 잡는 손끝이 덜덜 떨렸다. 하긴 어디 아내뿐이랴. 그를 만나본 여자 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 단 한 사람. 예경이라는 여자 빼고는.

예경이는 모든 걸 신앙논리에 맞춰 생각하는 여자였다. 사람을 볼 때도 외모나 배경 대신 속 됨됨이를 먼저 생각했다. 그 사람의 도덕적 가치관이나 순수성 내지는 인간성에 무게를 두었다.

예경이는 작은 키에 그다지 미인은 못 되었다. 그러나 묘한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그녀를 보면 정복욕보다는 뭔가 애틋하면서도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마력 같은 것이었다.

웬만한 여자 같으면 그의 외모에 홀딱 반해 정신없이 빠져들기 마련인데 그녀만은 예외였다. 도대체 그런 목석 같은 여자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장황하게 신앙논리를 늘어놓았다.

그를 전도 대상으로 정해 놓고 열심히 포교활동을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해대면서 그녀는 여간 열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의 존재를 설명해도 쇠귀에 경읽기라는 걸 알아 차렸을 때 그녀는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날 은철의 귓가에 그녀가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울면서 그는 후회했다. 그녀가 이야기 할 때 단 한번만이라도 동조해 줄 것을…….

은철은 아내에게 쫓겨난 후 정확하게 두 달만에 또 한번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혼 서류를 만들어 놓았으니 법원 앞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가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자고 하자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당신도 더 이상 애정이 식어진 부부관계를 지속하고 싶진 않겠죠. 위자료로 살고 있는 아파트와 재산 모두를 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도장 찍고 헤어집시다.”

아내는 이혼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모든 걸 걸고라도 이혼을 강행할 결심이었다. 마치 이혼에 목숨 건 여자처럼 보였다. 그도 그동안의 아내의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터라 더 이상 매달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아내가 아니라도 세상에 널린 게 여자니까. 그가 손만 뻗으면 달려올 여자는 쌓이고 쌓였으니까. 이왕 헤어지는 마당에 재산이라도 많이 차지해야겠다는 욕심에 그는 살고 있던 아파트와 위자료조로 더 많은 재산을 아내 쪽으로부터 건네받았다. 아내는 이혼 도장을 찍고 나더니 잠시 눈가를 훔쳤다.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보낸 오 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속아 산 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속아 산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네가 이렇게까지 지독한 여자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무리 남편의 과거가 진홍빛 죄악 투성이었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이혼을 결심하냐.

그렇다면 너는 내 이 외모에 과거가 없는 순백이라고 생각했단 말이냐. 어리석긴, 너는 역사도 모르느냐. 성군인 세종대왕도 처첩이 수십 명이었고 왕자만 스무 명이 넘었다.

또 세계의 제독 이순신 장군은 어떠하냐. 그에게도 애첩이 여럿이었다. 또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다윗왕과 솔로몬만 해도 처첩이 수백, 수천을 헤아렸고 자녀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았다. 세상 남자가 다 그렇지, 왜 너만 유별나게 구는 게냐. 네가 몰라서 그렇지. 처자식에게 끔찍한 남자일수록 바람을 피운다. 마치 체인징 파트너 하듯.

왜냐구? 새맛으로. 여자마다 다 맛이 다르니까.

그런데 그런 남편을 둔 여자들일수록 자기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순진하고 착한 줄 안다. 그렇게 착각하며 사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지. 너처럼 구닥다리 사고(思考) 로 살면 세상에 이혼 안 당할 남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막말로 여자가 따르면서 보채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뿌리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잘생긴 것도 죄란 말이냐. 그래서 내가 바람을 좀 폈기로서니, 병을 옮겨다 준 건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자식 하나도 못 낳아 준 년이 뭘 잘했다고 큰소리람.

그동안 데리고 살아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 것이지. 그래, 자식이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자식을 끈으로 끝까지 화해의 제스츄어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자꾸만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아내는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탄식하듯 말했다.

“세상에 불쌍한 건 여자지.”

아내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가희라는 여자에게 있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유부녀임에도 싱글인 것처럼 속여 그에게 접근했다. 남편이 모 건설회사 사장으로 재력과 함께 명예도 겸비한 여자였다.

그녀는 지방대학 미술강사로 재직하면서 나름대로의 명예를 쌓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서른 안짝으로 보이는 그녀는 사실은 후처였다. 상처(喪妻)한 지 얼마 안 된 돈 많은 남자에게 일부러 접근해 얻은 부의 결과로 그녀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학부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따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남편의 후광으로 지방대학의 강사자리를 얻어 본격적으로 교수 사회로의 진입을 서두르다 그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할 때 화려한 싱글로 표현했다. 아직 노처녀란 뜻인지 아님 이혼녀란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고 달려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잘 생긴 남자는 처음 본다며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행동했다. 그가 가정 있는 남자임을 밝혔음에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일부러 술을 마시고 찾아와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건 예사였다.

어떨 때는 강의 시간도 빼먹은 채 회사에 나타나 그를 혼비백산시킨 적도 있었다. 그녀는 직원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데도 일부러 그의 팔목을 낚아채며 애교를 떨었다. 얼마나 기가 세고 당당한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소문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어느날 그가 회사를 나서는데 검은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그녀는 일부러 더 과장 되게 행동했다. 일부러 그것을 계산에 넣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게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내에게도 집요하게 달려들어 이혼을 종용했다. 그의 여자 편력의 상세한 내용을 알만한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그 사실을 은철은 이혼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알았다. 어리석게도.

은철이 ○○ 톨게이터를 지나 ××시 입구로 들어설 때였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시내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맨 보이는 간판마다 호텔 아니면 나이트 클럽이었다. 한때 교육의 도시로 유명하던 이곳이 언제 이렇게 환락의 도시로 변해버린 걸까.

네온사인이 춤추는 무희처럼 온통 도심 한복판을 맴돌며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겼다. 폭풍우 같은 음악이 거리에 물결쳤다. 그러나 정작 유흥업소에 발길을 디미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불황의 여파가 워낙 심해 그토록 번창하던 환락산업도 사양길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하긴 근 2년 동안 문을 닫은 음식점만도 십오만 군데가 넘는다고 하지 않은가. 그들이 여의도 광장에 모여 솥단지를 집어던지며 항의 집회를 하는 모습이 뉴스 시간에 방영됐었다.

숙박업소는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한때 초등학교 근처까지 진출했던 러브호텔도 속속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은철이 ××시 번화가에서 약간 벗어난 공단 근처에 왔을 때였다. 바로 눈앞에 모텔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한 가운데 세로로 늘어뜨린 현수막이 보였다.

1일 숙박료 4만원. 대실료 2인당 2만원.

그 낯뜨거운 문구를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지나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도 그것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 도로 앞 사거리를 지나자 사방으로 뻥 뚫린 벌판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강이 흘러갔다.

조금 더 지나자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상가 지대가 아파트를 마치 포위하듯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을 조금 더 지나자 십자가 탑의 교회 건물이 나타났다.

그 건물 바로 뒤에 그들이 이용하는 아지트가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명의로 사놓은 원룸이었다. 어느날 그곳에 들어섰을 때 그는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섬찟한 두려움이 가슴을 파고들면서 잠시 정신이 아득했다.

귀기스런 느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 뒤였다. 그가 창가로 다가서자 검은 그림자들이 빙 둘러쌌다. 뭔가 공중을 가르는 세찬 바람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깨와 뒤통수에 쇠뭉치로 뼈를 부수는 것 같은 통증이 전해졌다.

그는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 몸이 나락으로 처박히는 느낌이 들면서 그의 정신은 무의식으로 침몰했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와 이혼한 은철은 직장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마침 명퇴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때였다. 무슨 소문이 어떻게 불었는지 명퇴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퇴직을 모두 파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의 실격을 당연지사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동안 그의 무분별한 행태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많은 여자들이 그의 퇴장을 아쉬워했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직장 문을 마지막으로 나서면서 은철은 심각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그때까지 살면서 한번도 실패나 파멸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또한 그로 인한 두려움도 경험해 본 일이 없었다.

아내와의 이혼도 새로운 출발로 생각할만큼 그는 모든 면에 있어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직장에서의 퇴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안심하고 있다가 보기 좋게 당한 최초의 몰락이었다.

생전 처음 당하는 쓰라린 낭패는 그를 끝없는 좌절과 혼돈으로 몰아갔다. 허무감이 가슴에 휘몰아치면서 그의 영혼은 나날이 황폐해졌다. 무서운 위기속에서 그는 미래를 방기했다. 그 틈새를 노려 여자들이 몰려들면서 또 다른 엽색행각이 시작되었다.

돈은 필요 없었다. 집도 직장도 필요 없었다. 모든 건 여자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었다. 눈만 뜨면 새로운 호텔에서 처음 보는 낯선 여자와 함께 누워 있었다. 어떤 날은 주사바늘에 찔리우면서 잠이 든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시체처럼 나뒹굴어져 있는 날도 있었다.

어떨 땐 머리맡에 흰 봉투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의 육신 위로 날마다 어둠의 세력이 강하게 내리 덮쳤다. 환락과 공포, 끈질긴 유혹이 그의 곤고함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고 공포보다 더 큰 몰락의 기운이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분초를 다투며 다가왔다. 그렇게 취생몽사 하던 어느날이었다. 꿈결에 그는 에쿠우스 승용차에 실려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자 잠결에 물결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에 의해 흠씬 두들겨 맞은 느낌도 든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방으로 옮겨진 것 같다. 워낙 술에 만취된 상태라 잘 기억나진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허무감이 파도처럼 그의 마음을 덮쳤다. 창 밖을 내다보니 눈부신 햇살이 물살에 투영되어 시신경을 자극했다. 물살이 퍼지면서 갈대가 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

물오리가 떼를 지어 유영하고 강 건너편에서는 쪽배 두 척이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선한 아침이었다. 그는 속옷을 갈아입다 말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분홍색 꽃무늬 여자 팬티가 보였다. 그는 더러운 물건 치우듯 그것을 발끝으로 던져버렸다.

내가 왜 이 곳에 있는 걸까. 그는 밖으로 나오며 자신에게 되뇌었다. 모텔 건너편쪽으로 풍차 모양의 카페가 보였다. 그곳으로 막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히히히 이히히 으하하하 우우우.”

그는 기겁할 듯이 놀라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에 갈대를 문 여자가 그를 바라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순간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런닝셔츠에 팬티바람으로 서 있었다. 세상에…….

그는 손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린 채 마구 뛰어 모텔로 돌아왔다. 모텔 직원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막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직원이 말했다.

“정오에 체크아웃 합니다.”

그가 못 들은 척하고 돌아서자 다시 말했다.

“숙박료는 여자분께서 치르고 가셨습니다. 방만 비워 주시면 됩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옷을 주워 입으며 한기를 느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방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귀기스런 여자 웃음소리가 계속 따라붙는 것 같았다. 무의식중에도 그는 지갑을 챙겼다.

모텔을 나와 국도 한 가운데로 걸어갔다. 이따금 승용차가 몇 대씩 지나갈 뿐 한산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그는 이정표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워낙 한적한 곳이라 그런지 이정표는커녕 길 안내판 표지 하나 없었다.

가까운 곳에 점포가 보였다. 무작정 발걸음을 디밀었다. 조밀한 곳에 소주와 과자 등속을 팔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전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던 노파가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뭘 드릴까요?”

그는 차편을 물으려다 말고 벽쪽에 난 빛바랜 종이 위에 써진 글씨를 읽었다. 간첩신고. 포상금 2천만원.

“저어, 담배 하나 주세요.”

그는 품에서 지폐를 꺼내 노파의 손에 건네 주었다. 노파가 등뒤에서 담배를 꺼내 주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어 여기가 어디쯤 되죠?”

노파가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손님은 어디서 오셨는데요?”

동시에 노파의 눈길이 간첩신고란에 가 닿았다. 별 수상한 사람이 다 있다는 의심스런 표정이었다.

“예, 제가 어젯밤 술에 너무 취한 상태에서 그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젊은 양반이,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라오, 요 앞 신
작로를 따라 걷다 보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길 잘 챙겨서 돌아가소.”

그는 점포를 빠져 나오며 참 멀리도 왔다고 생각했다. 노파의 말대로 신작로를 걷다 보니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거기서 30분 가량 기다리다 그는 행선지도 묻지 않고 무작정 버스를 탔다. 버스가 강물을 끼고 한참을 달렸다.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봄철이었나 보다. 모내기하는 모습이 이따금씩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혼미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일까. 내 이름은? 내게도 직업이 있었을까.

그는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자꾸만 자신에게 되물었다. 읍내에서 버스를 내려 고속버스로 갈아 탄 것 같은데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곳 지명도 깨끗이 잊어버렸다. 이후에도 그와 비슷한 행각은 계속 되었던 같다.

자고 일어나면 늘 처음 보는 낯선 곳이었다. 외딴 타지에서 그는 이방인이 되어 낯모르는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제력을 잃으면서 그의 정신 상태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늘 이상한 힘에 이끌려 낯선 곳을 헤맸다. 여행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그는 늘 불안한 기류에 떠밀려 살았다.

사람들은 툭하면 말한다. 어디론가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그러면서 이상한 기대감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 연이 닿으면 방종을 교감하며 정을 나눈다.

방황 그 자체가 목적인 듯, 쾌락에 발목을 빠뜨리우고 자청하여 술객이 된다.
능내역은 팔당역과 양수리역 중간 지점으로 강물과 산야가 보이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곳이다.

지금은 비둘기호 열차가 사라져 다시는 기차 여행은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십 년 전만 해도 능내역은 청량리에서 단돈 오륙백원만 주면 여행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렇게도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이 서울에 지척에 있다니…….

은철이 그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봄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사월이었다. 아지랑이가 강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역사(驛舍)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강물이 찰랑찰랑 귓가를 어지럽혔다. 정신이 산만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옆에 있었던 것 같다. 옆에서 종알거리며 무슨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여자가 누구였더라. 그는 기억을 떠올리다 말고 깜짝 놀랐다. 그래, 맞아 예경이었어. 그녀가 신의 존재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었다. 강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구원과 영생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다.


은철은 생각난 듯이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한 장을 꺼냈다. 구겨진 종이 위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손톱 끝으로 번호를 꾹꾹 누르면서 그는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희미한 기대를 동시에 느꼈다. 꼴까닥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핸드폰 저쪽에서 사랑의 협주곡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흔한 벨소리였다. 음악이 계속 이어지는 데도 응답이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거나 진동으로 해놓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소주를 따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소주를 입안으로 넘기자마자 기침이 터져나왔다. 김치찌개에 침방울이 튕겨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북풍이 사납게 그의 목안으로 감겨들었다.

은철은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강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쿨럭쿨럭 하고 계속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재발신을 눌렀다. 한참이 지나자 수화기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저어…….”

말을 하려는데 또다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여자가 누구세요? 하고 묻자 옆에서 “누군데 그래?” 하는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걸었던 기대가 무너져 버리자 거칠게 핸드폰 뚜껑을 닫으며 “씨팔”하고 욕설을 날려버렸다.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어 보았다. 똑같은 반응이 나왔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같이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마치 잘못 걸려온 전화처럼 끊어버렸다.

‘나쁜년들 지들이 좋다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모른 척해?’ 그는 분노와 함께 실망감을 담배 연기와 함께 날려보냈다. 은철은 구둣발로 담배를 짓이겨 끄고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강 건너편 쪽에서 칼바람이 덮칠 듯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침 청량리로 가는 시외버스가 도착했다. 그가 올라타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들 사이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어머 영화배우인가 봐, 멋있다 그치?”

히터를 켜놓았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여중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들이 그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며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친구들을 향해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혹시 아저씨, 영화배우 아니세요? 그 뭐더라 가을…… 뭐 그런 영화 있잖아요.”

“아니다.”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했다.

“오빠, 나 만나기 전에는 꽤 외로웠겠네.”

“왜?”

“나같이 잘 해주는 여자 친구가 없었으니까.”

“왜 없어? 일 년에 한번씩 있었지.”

“그러면 나랑 헤어져도 또 생기겠네.”

“당연하지.”

“그렇담 곧 내 후배가 생기겠군.”

둘은 허리를 비틀면서 웃었다. 그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도로 잠이 들었다. 여자들의 수런거림과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청량리에서 내린 그는 전철을 갈아타면서 갑자기 정신이 환해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거의 십 년만의 일이다. 출퇴근은 물론 자신의 승용차로 했고 어쩌다 여자들과 같이 지내고 나서도 에쿠우스나 벤츠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딱 한번 콜택시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운전 기사가 일찍 퇴근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은 십 년쯤 전의 일이다. 회사에서 급한 일이 생겨 약속장소로 가야 하는데 데모 행렬에 막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전철을 탔다. 전철을 타기 위해 그 많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얼마나 투덜댔는지 모른다.

“이러고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란 말이 나와? 아예 운동시키려고 작정했구먼 이렇게 계단이 많아서야…… 아무리 급해도 다시는 이용 못하겠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동전을 넣고 전철표를 사면서 그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왁자하니 몰려들었다. 어깨에 배낭을 멘 남자들이 모여서 뭔가를 심각하게 의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서 중년여자들도 수다를 떨며 웃고 있었다. 그는 표를 개폐기에 밀어넣고 전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굴속같이 컴컴한 지하도 속으로 전철이 굉음을 지르며 다가왔다.

그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휘묻혀 전철을 올라탔다. 그때였다. 전철 안에 있던 여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하나같이 젊고 늘씬한 미인들이었다.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어떤 여자는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손에 뭔가를 들고 그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손길을 피하느라 잠시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무수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그의 등뒤로 쏟아졌다.

아우성과 원한에 찬 빗발 같은 함성도 쏟아졌다. 전철이 계속 굉음을 지르며 달리는 동안 매질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찌된 노릇인지 말려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는 잠시 까무러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에서 이명이 났다. 전철이 쏟아내는 굉음과 함께 그는 거대한 음성에 점점 함몰되어갔다. 그 음성에 파묻혀 전철 역사를 빠져 나오는 동안 악한 힘에 눌려 그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뭔가 강한 충격에 정신이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낯선 골목길을 따라 집에 돌아와 보니 썰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한기가 온몸 구석구석을 강타했다.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맞았는지 온몸에 뼈마디가 욱신욱신거렸다. 그는 보일러를 최강으로 작동해 놓고 깊은 잠에 들었다.

사흘 밤낮을 앓았던 것 같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여자들이 찾아와 서로 간호해 주겠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대던 핸드폰도 그때만큼은 단 한번도 울리지 않았다.

흔한 문자메시지 하나 날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절해고도 같은 외로움 속에서 처음으로 외부세계로부터의 단절감을 느꼈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는데 몸에 반점 같은 것이 보였다.

두드러기 같기도 하고 근육에 통증도 느껴졌다. 아무래도 몸이 심상치 않았다. 감기 기운이 덜 가신 것 같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고열도 있었다. 혹시 폐렴 증상은 아닐까.

거울을 들여다보니 눈이 구만리만큼 들어가 보였다. 살면서 이렇게 비참한 몰골은 처음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일부러 아침을 굶은 채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아무런 예감도 없었다.

의사는 청진기로 몇 번 가슴을 꾹꾹 눌러보더니 혈액검사와 오줌검사 그리고 비뇨기과 계통에 해당하는 검사를 받으라고 지시하고는 자리에서 나가버렸다. 간단한 검사라는 말에 그는 일단 안심했다.

그런데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불안감과 의혹이 회오리 바람처럼 그의 뇌리를 급습했다. 집에 와 침대에 눕는데 여전히 기운이 없고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 전철 안에서 여자들이 그를 짓밟으면서 한 말이 얼핏 생각났다.

“이런 자식은 에이즈나 걸려야 해.”

에이즈? 그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설마?

이틀 후였다. 그는 검사결과를 보기 위해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의사가 챠트와 그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다시금 물었다.

“이은철씨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동성연애자 맞습니까?”

“뭐라구요?”

그는 얼굴빛이 먹빛으로 변하며 의자에서 나뒹굴어졌다. 의사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에이즈 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명됐습니다.”

그건 그가 세상에 태어나 두 번째로 겪는 몰락이었다. 아니 영원한 몰락의 기운이었다. 의사의 곤혹스런 표정을 뒤로 하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계속해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근육이 당기고 피부가 가려웠다.

고열로 입안이 바작바작 탔다. 고통이 온몸에 휘몰아칠 때마다 그의 뇌리에서는 자꾸만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풍차가 보이는 모텔 앞에서 만났던 여자의 웃음소리가.

“우히히히 이히히 으하하하 우우우.”

이따금씩 여자들이 내지르는 환청도 들려왔다. 쾌락의 절정에서 질러대는 교성과 중절 수술을 받고 와서 고통과 죄책감을 호소하는 여자들의 신음소리.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짤라 짤라서 버려.”

몇 달 후 그는 지방의 아주 조용한 산장에서 비참한 몰골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곁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예경이가 그의 마지막 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상여가 나가던 날 아내와 가희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쓸쓸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듯 두려움에 찬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아내는 내내 통곡을 하며 영구차를 끝까지 뒤쫓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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