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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과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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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의양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댓글 1건 조회 1,600회 작성일 2003-11-2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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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과 모래시계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차역은 정동진역이다. 동트는 새벽이면 동해바다에 펼쳐진 황금빛을 끼고 시커먼 석탄을 실은 열차가 긴 모습으로 그 역을 출발하였다. 역무원이 파란색 깃발을 펄럭이며 팔을 빙빙 돌려 둥그런 원을 그린다. 그러면 기차의 앞쪽에서부터 날카로운 쇳소리가 철컥철컥 맨 뒤까지 전달되고, 피곤한 광부의 발걸음처럼 육중한 기차의 몸체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잔뜩 뒤집어쓴 탄가루를 탁탁 털며 산길을 터덜터덜 돌아 집을 향한다. 바다를 뚫고 떠오르는 황금빛 햇살아래 드러난 시커먼 광부의 얼굴, 그리고 속을 훑는 해장술에 번뜩이는 막장인생의 광기어린 눈빛, 비틀대는 걸음으로 문을 박차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에 아예 죽어버리듯 쓰러져 잠드는 사람들, 그렇게 정동진의 아침은 시작되었다.


어둠이 내리면 살림살이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아낙네가 지르는 아귀소리, 뒤이어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도망간 마누라에 대한 분노로 반미치광이가 된 김씨의 노랫소리가 다닥다닥 붙은 숙소의 골목을 돌아설 때면 정동진의 밤은 깊어만 갔다. 탄가루를 실은 열차가 굉음을 내며 출발한 바닷가에 밀려드는 파도, 고된 삶에 비틀어지고, 찌그러지고, 부셔지고, 짓밟힌 인생들의 귓전에는 무심한 파도소리만이 철썩거렸다.


이십여 년 전,

나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정동진을 여행 중이었다. 태백선은 숨찬 소리를 토하며 강원도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영월읍에서 잠시 머뭇거렸던 열차는 하얀 안개와 검은 대지사이를 뚫고 또 발걸음을 옮긴다.


사북탄광폭동사건, 쥐꼬리만한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참다못한 막장의 막판인생들이 막판수단으로 막판을 벌였다. 물론 피비린내가 골짜기에 흘렀다. “사회를 혼란시키는 불온분자들”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라는 단어조차도 몰랐다. 먹고살기 힘들어 살려달라고 저항하였더니 이상하고 고급스런 단어가 자신에게 붙여진 것이었다.


기차는 하늘아래 매달린 태백읍으로 치솟았다. 하늘은 검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도 검은색이다. 이곳은 칼라사진을 찍는 칼라필름이 필요 없었다. 찰칵하는 셔터소리와 함께 암흑이 렌즈 안으로 들어왔다. 그 틈새로 아낙네의 손에 들린 하얀색 빨래가 흔들렸다.


기를 쓰며 험준한 태백준령을 넘어선 기차가 처음으로 마주치는 칼라가 바로 동해바다에 펼쳐진 파란색이었다. 비로소 숨찼던 기차소리는 숨을 고르며 내리막길을 달린다. 웅웅 하던 엔진소리로 요란했던 철길이 철커덕 철커덕 하며 규칙적인 제 소리를 낸다. 허리 잘린 반도의 북쪽 끝에 자리한 마지막 탄광역, 그 기차역을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이 손가락 사이로 차표를 내밀고 나와서는 광장에 섰던 것이다. 창백한 표정으로,


그로부터 약 이십 년이 흐른 A.D. 2000년 여름.

동해고속도로에서 샛길로 들어선 검은 승용차가 길을 찾고 있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바닷가로 다가간다. 산을 깎아서 줄줄이 터를 잡아들어선 모텔, 길가에는 손님을 부르는 오징어, 감자, 옥수수, 해삼, 멍게, 도다리, 광어, 등등......


비키니수영복 차림의 여자가 무리지어서 거리를 활보한다. 멀리 보이는 배처럼 생긴 호텔 앞 광장에는 자가용들이 가득 들어차고, 언덕위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다.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주춤주춤 거리던 검은 승용차는 사람 없는 구석으로 몰려나기 시작했다. 겨우 돌아가는 산길의 한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옛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원시인의 목소리로 흑백의 가락을 뽑던 그는 죽었단 말인가, 동네 어귀에서 흐릿한 백열등을 켜놓고 오징어물회를 팔던 노파도 안 보인다. 탄가루 날리는 좌판에 걸터앉아 막소주를 마시며 도망간 마누라에 대한 분노를 토하던 그 남자도 사라졌다. 다닥다닥 땅에 붙은 집도, 골목의 아귀다툼도, 배회하던 검은 강아지도, 작부집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도, 다 어디로 갔는가,

석탄을 싣고 몸체를 흔들며 떠나던 열차소리도 사라졌다. 파도소리도......


흐르다 정지된 시간,

모래시계는 더 이상의 시간을 가리키지 못했다. 약 이십 년 전의 그 시간에서 멈추어져 있었다. 멈춘 시간을 넘어선 이상한 세계는 동해로 뻗어 있었다. 중년후반의 남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일어섰다.


순간 너덜너덜한 옛 광부의 시커먼 옷자락에 빨간 비키니수영복이 겹쳤보였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욕감이 가슴을 파고든다.


모래시계는 먹통이다. / 아무런 역사가 없다. / 옛 시인의 노래는 끊겼다. / 기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밀려들던 파도소리도 사라졌다. / 나는 시간을 알고 싶었다. / 축축한 오솔길에 앉은 노인에게 물었다. / 지금 몇 시쯤 되었습니까? / 노인은 대답했다. / 콜록, 콜록...... / 진폐증에 시달리는 가쁜 기침소리 / 모래시계가 흐르는 소리인가......


댓글목록

유영님의 댓글

유영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중년후반의 남자에 눈물이 낮설지만은 않읍니다....
누군가가 아주 많은것은 없는것이라 표현하는것을 들었읍니다. 시간이란 인류 이전부터 시작을 알수없이 시작하여
"영원"이란 단어말고는 표현할수없이 이어질 시간.....
그것은 너무나 많고 길어서 없는것 인지도 모르겠읍니다.
시간이 가는것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가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아니, 우리가 가는것이라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중년남자의 눈물에 함축된 회한과 사랑 줄곳을 잃은 외로움과
이방인이 되어버린 낯서름에 ,나의 눈물도 드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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