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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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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의양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댓글 0건 조회 1,580회 작성일 2003-11-2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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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몸이 떨어지자마자 차가운 바닥은 흔들렸다. 하얀 레일을 타고 탱크가 달려오는 듯한 진동소리가 들렸다. 두개의 불빛...... 눈부심으로 들이닥치는 두개의 전조등과 귀청을 찢으며 사방으로 날리는 쇠바퀴소리가 들리는 순간,

70미리 대형영화는 상영도중 필름이 끊겼다. 분주했던 화면이 별안간 컴컴해 지면서 주변에는 침묵만 감돌았다.


“에잇, 씨팔~ 어떤 또라이 새끼가 또......”

모니터에 뜬 화면을 보며 사령실에 앉아 있던 당직자는 욕설을 퍼부으며 비상마이크를 잡았다. 전체 시스템에 비상이 걸렸다. 모든 것은 작동중지다.

“현재위치에서 정지하십시오.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든 작동을 중지시키고 기다리기 바랍니다.”


“앞으로 좀 더 빼라구~” 누군가 소리쳤다.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며 육중한 차량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눈을 감았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 내렸다.

“완전히 해체됐어.” 제일 먼저 레일위로 뛰어내린 사람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 고향을 떠나 유랑민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근로자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가구공장, 염색공장, 고물상을 전전하며 꿈을 모으던 그는 차마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4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를 자랑하는 지하철에 허기진 몸을 던졌다.


나는 흔들리는 전철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며칠 전에 CCTV에 잡혀 방송된 외국인근로자의 생생한 자살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뒤뚱거리며 껌팔이가 지나간다. 발도 뒤틀리고 엉덩이, 허리, 목, 그리고 껌을 내미는 손도 뒤틀렸다. 마치 바위를 뚫은 노송 같다. 나무 자체가 뒤틀리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도 뒤틀리고, 전체 모양도 모두 뒤틀려 바람에 흔들거린다.


KOREAN DREAM.

위장결혼으로 오고, 밀수선을 타고 오고, 관광으로 와서 눌러 앉았다. 거미줄처럼 얽힌 뒷골목으로 스며들어 100만원 안팎의 봉급으로 몸을 판다. 봉급이나 제대로 받으면 다행이다. 몸은 어찌 되어도 좋으니......


감았던 눈을 떴다. 전철출입문 위에 달린 전광판에 글이 뜬다.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신고를 기다립니다. 신고전화는 국번 없이 111번. 국가정보원.”

외국인근로자는 “우리”라는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기에 너희들은 예외의 인간에 속한다. 아무런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지 못한다.


저녁을 같이 먹고 가라는 친구의 청을 뿌리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침에 남겨 놓았던 찬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반 그릇만 남은 찬밥이 왜 그렇게 소중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일이면 쉬어서 먹지 못할 것 같기에 아침에 나오면서 저녁에 라면을 끓인 국물에 말아 먹으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유랑민의 죽음.

흔들리는 전철에 몸을 맡긴 나도 유랑민이 아닐까, 70억 지구의 인구 중에서 지구가 자기의 고향이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플로리다의 팜비치에서 몇 백억 원씩 가는 으리으리한 별장 문을 이천 만원자리 구두를 신고 나와서, 십억 원이 넘는 차에 오르는 사람이 지구를 일컬어 고향이라고 할까,


징그럽게 뒤틀어 올라간 몸을 뒤뚱뒤뚱 거리며 뒤틀린 손으로 껌을 내미는 껌팔이가 진정한 지구의 주인은 아닐지 모르겠다. 껌 한통에 천원을 성큼 내주는 수더분한 중년아줌마가 고향을 일컬어 지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전철역마다 고향을 잃은 유령은 떠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긴 통로를 거슬러 올랐다. 표를 출입구에 달린 구멍에 넣고 나오는 순간, 페루의 절벽을 날아올라 서울의 지하철에서 큰 날개를 펄럭이는 콘도르를 보았다.

아...... 사방으로 날리는 콘도르의 깃털, 잉카의 달빛이 내리듯 반짝이는 눈부심, 그것은 황금의 제국이었다.


유랑하는 잉카의 후예들이 잉카의 악기로 잉카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뉴깐치냐 (Nucanchina). 유랑악단이었다. 에콰도르에서 온 4인조 악단은 원색의 민속 옷을 입고 지하철예술극장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빙 둘러선 사람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젊은 사람들은 흥에 겨워 좁은 공간에서 몸을 같이 흔들었다.


팬플릇처럼 생긴 삼뽀냐라는 대나무 악기가 새가 날아오르듯 투명한 음을 낸다. 휘감는 기타소리가 같이 어우러지더니 께냐라는 악기를 든 사람이 연주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단소처럼 생긴 악기에서 나는 절묘한 소리,


너무 애절한 소리다. 잉카계곡의 바람을 타고 달빛을 거슬러 올라, 멸망한 제국의 발아래 너울거릴거나, 어머니의 옷자락에 스며들어 가슴속을 파고들거나, 유랑에 지친 몸을 눕혀 님의 손을 잡아 가슴에 품을거나......

나는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쳤다. 짝짝 하는 소리를 내며 뒤꿈치를 들먹거렸다.


유랑악단을 둘러선 유랑민들,

앵콜을 외치는 소리에 4인조 유랑악단은 어깨를 들먹이며 잉카의 울음을 마구 토했다. 아팠다. 온 몸이 아팠다. 왈칵 솟는 울음을 삼키며 손을 높이 들어 또 앵콜을 외쳤다.


아...... INCA DREAM

“천년만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 그것은 잉카의 꿈이었다. 마추픽추 계곡에 서린 달빛을 타고 비상하는 콘도르의 날갯짓이며, 유랑민의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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