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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의양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댓글 0건 조회 2,251회 작성일 2003-12-0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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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라는 말은 타고난 어떤 재능을 말한다. 특히 예술적 재능과 그 재능을 발휘하려는 강한 욕구를 일컬어 끼라고 한다. 속되게는 무분별한 남녀관계를 일삼는 기질을 포함시켜서 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끼라는 말은 범상치 않는 영역을 지닌다.


끼는 봄이다. 다른 계절을 거부한 영원한 사월이다.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쉼 없이 흔들린다. 잔설을 뚫고 내미는 파란 싹의 호기심 많은 눈망울이다. 외투를 벗어 던지고 나신을 드러낸 정원의 목련꽃이고, 팔짱 낀 연인의 머리위로 날리는 벚꽃이며, 양지에 누워 햇살에 몸을 녹이는 각설이의 하품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정신이 아니다. 비를 맞으며 방황하는 발걸음도 내가 딛는 것이 아니요, 달밤에 체조하는 몸도 내 몸이 아니다. 무당이 울며불며 내 조상을 불러내어 한을 토하고, 자손의 드센 팔자를 탄하는 입이 어찌 무당의 입이라 할 수 있겠는가, 처자식을 내버린 채 옆집의 유부녀를 끼고 도망가는 새벽길이 어찌 제 정신을 가진 자가 갈 수 있는 길이겠는가,


인간들 틈에서 너울대는 끼는 굶어죽은 귀신이다. 때깔이 나쁘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구천을 날아올라 제 갈 길을 편하게 가지만 배고픈 귀신은 다리가 휘청거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헛것이 보인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지상으로 떨어진다. 불쌍하다. 그 밑에 있던 재수 없는 년 놈들이 귀신바가지를 뒤집어쓰다니,


신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간도 아니다. 그래서 귀신이다. 반인(半人) 반신(半神)으로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허공에 떠서 허수아비의 표정으로 떠돌아다닌다. 연지곤지 찍은 허수아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허수아비, 목을 옆으로 갸웃하며 실실 웃는 허수아비,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허수아비.......


보소, 보소, 나를 보소. / 실없이 울고 웃는 나를 보소. / 땅 속에 눕혀 주소. / 아니면 하늘로 보내주소. / 괴롭소이다. 징그럽소이다. /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오. / 내 정신이 제 정신이 아니라오.


끼는 잠이 없다. 밤낮으로 시퍼런 눈을 뜬 채 가슴을 잡아끌고, 뇌리를 흔들어, 두통, 치통, 생리통, 근육통, 등등 온갖 통(痛)을 만든다. 이유 없는 통증에 시달리며 병원을 찾지만 의사는 엉뚱한 소리만 지껄인다. “마음을 편히 하시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몸속에 들어앉아서 의사의 말을 들은 끼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독살 맞은 목소리로 싸늘히 말한다.

“마음을 편히 하라고? 누구 마음대로? 내 허락 없이는 손가락 하나도 편할 수 없을걸,”


천상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마주보고 소리꾼은 득음의 날개를 펼치려 소리친다. 어허이~ 야, 어허이~야, 삼일 낮과 밤을 쉰 목소리 달래며 지른 소리에 피가 섞여 나른다. 득음의 순간, 그토록 얄밉던 끼가 오색찬란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허공에 너울거린다. 소리꾼 앞에 내려앉아서 다소곳이 머리 숙여 절한다. 그리고 눈시울 적시며 말한다.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소.

전생도 울었고, 그 전생도 지지리도 못난 삶을 살았다오. 또 그 전생의 전생도 마찬가지였다오. 비비꼬이고 뒤틀린 겁을 지고 내가 얼마나 울었겠소. 이제 당신의 목청을 빌었으니, 영겁을 깨뜨려 득음타고 천상으로 올라, 옥황상제의 면전에 엎드릴 수 있다오. 비로소 편히 쉴 수 있다오.


온 몸이 물감으로 얼룩진 화가의 붓끝을 타고 흘러나온 끼가 소리친다. “저기의 소리꾼은 뱉을 것을 뱉었건만,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그토록 가두고만 있다는 말인가?” 화가의 발길질이 캔버스를 향하여 날아간다. 던진 붓이 유리창에 부딪치며 물감을 흩뿌린다.


새벽에 들리는 자판소리. 모니터에 뜬 끼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나를 보내주오. 저 세상으로...... 제발, 제발 나를 도와주오.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내 한을 들어 보시오. 세상의 글을 모아 모아서 다리를 놔 주오. 천상이 그립소. 당신의 글을 타고 훨훨 날게 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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