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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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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o_profile 신외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658회 작성일 2006-11-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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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

신외숙

이십 년 전만 해도 경동시장은 마늘의 집산지였다.

시장 초입에서부터 청량리 시장으로 이어지는 말미까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마늘로 진풍경을 이루었다. 시장 곳곳이 마늘 냄새로 진동을 하는데 이른 새벽이면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트럭으로 잔뜩 싣고 떠났다.

아르바이트하던 곳이 경동 시장 근처여서 나는 시간만 나면 달려가 시장 구경을 했는데 시장 안에는 참으로 희한한 구경거리가 많이 있었다. 마늘을 비롯한 각종 야채는 물론 싸구려 옷가지와 약장사까지 있었다.

시장 골목 한적한 곳에 두꺼비를 끓여 기름을 받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자리에는 병에 담긴 약을 쭉 늘어놓고 마이크로 기염을 토하는 약장사도 있었다. 약장사는 사각진 철깡통에서 원숭이를 꺼내 선보이며 구경꾼들을 끌어 모았다.

원숭이는 한복을 입고 앉아 주인이 시키는 대로 온갖 재주를 다 부렸다.
구경꾼들에게 큰절을 하는가 하면 춤을 추고 온갖 심부름을 다했다. 가끔씩 실수를 하면 주인이 사정없이 때리는데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원숭이의 재롱이 끝나면 약장사는 본격적으로 약 선전에 들어간다. 내용인즉슨 뻔하다.

만병 통치약이라는 것이다. 병에서 약을 따라 구경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데 게중에는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원숭이의 재롱이 끝나면 발길을 돌이키고 만다.

경동시장과 청량리 시장 중간에 청과물 도매 시장이 있었다. 동네에서 파는 것보다 보통 두 배는 쌌다. 큰 프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자두가 천 원할 정도였다. 야채 청과물 시장을 지나면 청량리 시장으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오리, 개, 토끼, 고양이를 파는 가게가 나타난다.

살아있는 짐승을 즉석에서 잡아 파는 곳이다. 그 살육현장은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 오리들은 죽지 않기 위해 꽥꽥거리고 좁은 철망 안에 갇힌 누렁이는 슬픈 눈빛으로 행인들을 바라본다.

그런가 하면 새끼 고양이들은 곧 닥칠 죽음도 모르는 채 철망 안에서 서로 장난질을 친다. 그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잡화상이 이어지는데 지금은 길도 넓어지고 높은 비닐 천막으로 지붕을 만들아 놓아 비를 맞을 염려도 없다.

그 골목길 끝에 이르면 청량리 우체국이 길 건너편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청량리 역사(驛舍)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십여 년 전, 고래사냥 영화를 찍던 곳이다. 그 당시 나는 청량리 근처를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엄청난 소설을 구상했다. 청량리에서 떠나는 비둘기 열차를 타고 양평이나 원주로 가 낭만을 꿈꾸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청량리 시장"이다. 그 당시만 해도 청량리 역사는 시골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한복을 입은 노인들이 거리 곳곳에 눈에 띌 정도였다.

또 대표적인 윤락가로 청량리 588을 떠올릴 정도로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우체국 맞은편 시장에는 먹자 골목이 형성돼 있었다. 파라솔을 쓴 노상 음식점이 쭉 늘어서 있었는데 연탄 화덕에서는 멸치국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당시 국수 한 그릇에 육백 원 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국수를 구멍 뚫린 국자에 넣고 휘휘 저은 다음, 그릇에 담아 고춧가루와 유부 양념을 넣고 뜨거운 국물을 붓는다.

그 국수를 젓가락으로 건져 올려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으면 검게 물든 청량리 하늘이 나를 내려보며 웃는 것 같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로들도 긴 나무 의자 위에 앉아 기차 시간에 쫓길 새라 허겁지겁 먹는다.

그 주변을 주인 잃은 강아지가 순대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 서성댄다. 그 먹자 골목을 지나 고추 방앗간 가느다란 골목 사이로 들어서면 시골 밥상이란 백반 집이 보
인다.

(내 소설 "청량리 시장" 첫 부분에도 나온다)

언젠가 SBS 리얼 코리아에 방영됐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밥 한 상에 이천 원 받지만 20 년 전에는 단돈 천 원이었다. 그 훨씬 이전에는 오백 원이었다고 한다.

칠순이 다 된 할머니가 큰딸과 며느리와 함께 새벽 다섯 시부터 밥을 파는데 그곳의 상인들은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보험 설계사들도 들러 밥을 먹고 간다.

지금은 프로판 가스를 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탄 화덕에서 국 끓이고 밥하고 모든 음식을 다했다. 그 집은 특히 된장국 맛이 일품인데 그것은 할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에다 멸치 다시물을 이용해 끓이기 때문이다.

반찬도 참기름 향이 살살 도는 게 아주 맛깔스럽고 좋다. 한 가지 특징은 멸치나 새우젓을 제외하고는 모두 야채라는 점이다.

공기 위로 수북히 올라온 밥과 된장국 김치 이외에 반찬이 4-5 가지나 된다.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그곳은 소설 소재감이 무진장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에 가면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한 어느 방송 아나운서의 말이 생각난다.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부지런한 몸놀림은 삶에 대한 전의를 다시 한번 일깨우기도 한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구나, 나도 열심히 보람 있게 살아야 될 텐데."

저절로 다짐이 된다. 간혹 상인들의 악다구니가 들려오지만 그들에게서 삶의 용기를 배운다. 사시사철 같은 자리에 앉아 장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력과 함께 숙연함마저 느낀다.

자꾸만 안일 속에 침잠하려 들 때면 나는 그곳을 찾는다. 상인들의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자성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다.

그런데 전업작가로 들어선 지 8년 째 된 지금, 어쩌다 그곳에 가보면 소설 소재로만 떠오르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옛날보다 훨씬 더 감성이 쇠퇴되고 메말라진 것 같다.

상인들의 모습에서도 생기보다는 지친 표정이 더 발견되는 까닭은 왜일까.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이 안 돼 아우성이고 각종 끔찍한 인간 악의 형태가 매일같이 뉴스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전에는 동네보다 두 배 가량 쌌던 야채도 이제 거의 똑같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요즘은 동네 가게에서도 농가와 직거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부러 차비 들여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떨 땐 동네 가게가 더 싸게 먹힐 때도 있다. 생활은 점점 편리해지고 낭만심리나 따듯한 인정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지금은 시골 어디엘 가도 농촌 정취는 찾아보기 힘들다. 옛날처럼 원숭이가 재주 부리는 장구경은 텔레비전 연속극 속에서나 보게 되었다. 시장엘 가도 값싼 중국 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옷 가격은 이십 년 전에 비해 거의 변동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품질은 형편없이 떨어져 버렸다.

돈벌 길은 점점 힘들어지고 예술이란 단어는 먼 꿈속의 이야기처럼 들어보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나는 옛날에 내가 풀어놓았던 꿈타래를 찾기 위해 가끔씩 경동시장을 찾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내 모습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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