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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장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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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철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16회 작성일 2009-05-19 11:29

본문

                                                                      백 원장의 하루
                                                                                                                        김철수

  차장 밖으로 내다보이는 아침 풍경은 지난밤의 혼란스러웠던 기억들을 마치 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말끔하게 씻어가고 있었다.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몸부림쳤던 내 마음은 아침햇살에 깨어나는 이름 모를 풀과 야생화들에게는 우스운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가을이 깊어가는 들녘 그리고 형형색색 물감으로 색칠해 놓은 듯 어느 유명한 화가의 그림처럼 가을의 산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뭐라고요?”
 “진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단 말입니까?”

 순간 그는 눈앞이 캄캄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땅거미가 어두움을 몰고 온 탓도 있겠지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강 선생의 다급한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한밤중으로 삼켜버렸다.

 “진이가 학원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가려고 서 있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가 미처 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차바퀴가  진이의 발목을 타고 넘어갔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가 조금 만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오늘 따라 또 차가 많이 밀려서….”
 “아니 차가 어떻게 달려왔으면 큰 도로도 아닌 일방통행인 거기서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까?”

 입 앞까지 나오려든 거친 항변을 생각으로 돌리고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기 바쁘게 학원 문을 나섰다.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발목이 차바퀴 밑에 깔렸다면 많이 다쳤을 텐데…”

 무엇보다 진이의 상태가 걱정되어 옮기는 발걸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나가는 택시의 뒷좌석을 빌렸다. 평소 같으면 해질 무렵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학원 창가에 서서 해와 바다의 환상적인 만남을 감상하며 떠오르는 시상을 음미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는 바다를 좋아하고 음악과 글을 사랑하는 사십대 초반의 문학도였다. 그가 생활하고 있는 곳은 남쪽바다의 맑고 깨끗함이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과 어우러져 마치 호수의 징검다리를 연상케 하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와 같은 작은 도시 ‘통영’이었다. 통영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아니 그는 통영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생활은 지금처럼 안정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통영에 자리 잡기 전 그는 마음 둘 곳을 찾아다니던 나그네였다. 뭔가를 갈구하며 헤매던 그에게 충족으로 채워주었던 곳, 그 통영에서 그는 자기 생활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음악과 공부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며 그의 꿈인 작가의 길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곳, 그에게는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
                                                                  -1-
다. 택시 안의 그는 지금 당황스러움과 긴장된 이유였을까? 지척인 병원이 멀게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한 그는 숨 돌릴 틈 없이 응급실로 향했다. 긴 복도 끝에 위치한 그곳은 마치 죄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응급실이라고 적혀진 문 앞에 이르자 마주보이는 의자에 넋이 나간 듯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진이 어머니였다. 하얀 백지장이 물에 젖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이 그녀는 나오는 울음을 소리 없는 눈물로 대신했다.
 
 “진이는요?”
 “지금 막 사진 실에 들어갔습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제발 아무 이상이 없어야 할 텐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엑스레이 촬영 후 결과를 봐야 아  시겠답니다. 지금으로서는 아직 뭐라고 확답할 수 없다는 군요.”

 눈물 섞인 목소리로 그의 물음에 대답한 후  그녀는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진이가 실려 들어간 문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왠지 그녀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아이를 둔 어미의 심정은 누구에게나 일반이었다. 그에게도 아들이 있다. 첫째는 고등학교 2학년인 백태민이며, 둘째는 쌍둥인데 중3학년인 상민, 광민 이다. 결혼을 빨리해서 인지 사십이란 나이에 비해 아이들이 큰 편이었다. 흔히들 남들이 그를 호칭할 때 백성민이란 이름이 있지만 백 원장 또는 쌍둥이 아빠로 통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아들 삼형제는 큰 위안이었다. 그리고 힘이기도 했다. 한번 씩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거리를 거닐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어떤 이는 보디가드 요원 같다고 말하는가하면, 또 어떤 이는 든든한 군대 같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 아파트 마트 주인아주머니는 우리 가족들이 지나가는 것만 보면 넋을 잃고 쳐다보기만 한다. 한번은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 가족만 보면 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쳐다보느냐고 말이다. 너무 유치한 질문이었을까?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그와 같은 질문에 말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가끔은 ‘보기 좋아서’란 말 한마디가 다였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길거리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건장한 남자 넷과 그들 가운데서서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은 마치 유명한 연예인이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 오버한 것 아닌가! 아니다 비록 표현이 그렇다고 손 치더라도 그에게 있어서 세 아들의 존재는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 어쩌면 그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로서의 그는 셋 아들에게 은혜 입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를 선물해준 소중한 천사들’ 그렇게 그는 감사했다. 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나 사랑스러웠겠는가? 사랑하는 딸의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이 부모님은 기쁨을 얻고 행복해 했을 텐데 그렇게도 예쁘고 귀여운 딸이 차에 치웠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당신이 원장이야?”
 “예, 맞습니다만….”
 “도대체 선생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2-
 
 “정말 형편 없구만, 아이를 내려주려면 집 앞까지 안전하게 내려줘야지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에 무책임하게 아이만 혼자 내려주면 어떡하란 말이야, 정말 뜨거운 맛을 봐야 겠구    만.”
 
 언제 나타났는지 굵은 음성의 한 사내가 그를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듯이 쬐려보며 몰아 세였다. 험상궂은 사내의 표정은 먹이를 앞에 둔 독사처럼 싸늘하면서도 살의를 느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 말이야 전적으로 이 사고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는 거야 알겠어?”

 사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다그쳤다. 처음엔 진이와 관계있는 사람 인줄만 알았던 그는 사내의 말과 행동을 보고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구나!’를 직감하고 진이 어머니께 살며시 귀를 두드렸다.

 “저 남자 진이 아버님 아니시죠?, 혹시 사고차량 주인…, 맞죠?”
 “예, 선생님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그냥 왠지 진이 아버님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랬다, 그 사내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사고가 난 건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 학원 차량 운전기사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며 병원이 떠나가라는 듯 큰 소리로 그를 협박하고 입에 걸리는 모든 말에 엔진을 장착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떠들었다. 하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진이의 상태만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사진실 문이 열리면서 의사 선생님과 함께 진이의 모습이 보였다.

 “천만 다행이네요, 처음엔 차 밑에 깔려서 발통이 타고 넘었다는 말을 듣고는 걱정 했었는  데…, 믿기지가 않네요.”
 “그럼…?”
 “뼈는 이상 없구요, 근육과 힘줄이 조금 놀란 것 같군요, 정말 기적이에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많이 놀랐을 겁니다.”
 “정말이죠?, 정말 아무 이상 없는 거죠?”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혹시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며칠 동안 지켜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혹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으로 조마조마 했던 긴장감이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사르르 안도감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움과 불안감에 흘렸던 눈물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 반, 웃음 반 되었다. 초롱초롱한 진이의 얼굴이 엄마와 그를 쳐다보며 웃음의 냄새를 풍겼다.

 “진이야, 많이 놀랐지?‘
                                                                          -3-
 “선생님, 배고파요, 엄마, 나 배고파”
 “그래 우리 공주님 뭐 먹고 싶어?, 선생님이 진빵 사줄까?”
 “정말요?, 나 진빵 정말 좋아하는데….”
 “진이야, 너 그럼 못써 선생님께 버릇없이.”
 “아닙니다, 진이가 이렇게 무사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요”

 그는 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발길은 병원 근처 평소에 자주 다니던 진빵 집이었다. 사고로 인해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도 진이의 장난 끼 어린 표정은 여전했다. 그는 어릴 적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즐겼던 진빵의 맛을 떠올리며 배고픈 진이를 위해 한 보따리 가득 즐거움으로 채웠다.

 “진이야, 진빵 여기 사왔지요”
 “와-아, 맛있겠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 이렇게까지…,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진이 웃는 얼굴 보니까, 이제 안심이 되네요. 많이 놀라셨죠?”

 진이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던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 병원을 들고 갈듯이 난리를 치며 그를 협박까지 하던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그 분은 안보이시는 것 같네요?”
 “말도 마세요, 자기가 사고를 내놓고도 얼마나 뻔뻔한지 그런 사람은 처음 봤어요. 자기는  아무 책임이 없다며 그냥 가버렸어요. 그렇잖아도 진이 아빠에게 연락했는데 출장 중에 전  화를 받아서 급히 내려오고 있답니다. 화가 많이 나셨나 봐요. 진이라면 정말 죽고 못 사  는 아빤데….”

병원 측에서는 진이의 상태가 괜찮으니 입원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해서 간단히 치료한 뒤 진이네 집까지 택시로 보내고 그는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들이 오늘 따라 유난히 을신년스럽게 느껴졌다. 통영의 밤바다는 파도를 타고 날아오는 갯내음과 물위로 비쳐지는 도시의 흔적으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 교향곡처럼 다가와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위로가 아닌 대화였다. 아주 오래된 옛 친구와의 우정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는 통영의 밤바다와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만약에 크게 다쳐 뼈라도 부러졌다면 어찌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집에 도착한 그를 맞이하는 그의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낮에 학원에 전화했는데 김 선생님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이미 들은 모양이었다. 김 선생님은 학원에서 아이들의 공부를 맡고 있는데 가끔씩 아내의 전화를 받으면 학원에 있었던 일들을 친한 자매처럼 스스럼없이 얘기하곤 한다. 오늘도 그랬을 것이다. 사소한 내용도 보고하는 습관이 있는 그녀는 아내의 정통한 소식통이다. 김 선생님으로부터 오늘 있었던 일을 듣고 아내는 그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린 탓인지 왠지 목이 더 길게 느껴졌다.

 “태민 아빠, 어떻게 됐어요?, 아이가 많이 다쳤어요?”
                                                                            -4- 
 “여보, 나 배고파 밥 좀 줘, 오늘 따라 더 허기지네”

 그는 아내의 물음에 못들은 척 딴청이었다.

 “애들은 아직 학교에서 안 왔어?”
 “오늘 태민이는 학교에서 수학여행 갔고 상민이와 광민이는 자고 있어요. 오늘 체육관에서  운동을 좀 많이 해서 피곤하다더니 오자마자 씻고 둘 다 골아 떨어 졌어요. 그래도 대견해  요, 변함없이 열심히 하는 것 보면 언제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아까 저녁 무렵에 김 선생님과 통화했었는데…, 나도 걱정이 돼서 그래서 당신 오기만 기  다렸는데….”
 “괜찮아 다행히 무사해, 너무 걱정 하지 마”
 “사실 나도 걱정 많이 했었거든 그런데 참 감사 하네, 오늘 말이야”
 “갑자기 뭘?, 학원생이 교통사고 난 게 감사해요?”
 “아니, 그게 아니고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여튼 많  은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같아”
 “난 당신 말 도저히 이해 못 하겠어요. 나 같으면 놀라서 아무생각도 못 할 것 같은데…,  하여튼 당신은 좀 엉뚱한 면이 있어요.”
 “그건 엉뚱한 게 아냐, 그건 나에게 있어 또 다른 내 모습이고 내 진심이야.”

 그랬다, 그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할 때, 늘 그랬듯이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그의 일과는 오전에는 학운 아이들의 학교 등교 길을 책임지는 운전기사로 또 그 일이 끝난 후에는 병아리 아기 천사들을 맞으러 시내일주를 한다. 운전대에 앉아있는 시간이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아홉시 반쯤 된다. 그 일이 끝나면 학원에 들어와 청소와 학부모님과의 상담, 그리고 오후 수업준비 등 이런 순서로 진행되고 나면 오전 시간은 날개를 단 활처럼 지나가 버린다. 그래도 가끔은 그 와중에 짬을 내어 학원에서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선창가를 찾아 지나가는 해와 갈매기와 파도들의 이야기를 즐거이 듣곤 한다. 그의 오후일과는 오후 한시부터 시작되는데 그에게 있어서 가장 심리적인 긴장감과 행복, 전투, 환희, 좌절과 같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간들로 그를 저녁 여덟시까지 지배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이젠 그에게는 뗄 수 없는 귀한 시간이 된 것이다. 그에게 누구보다 애정과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전에 느끼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그런 생각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그 일에 자신의 맘과 정성으로 임한다면 모든 것이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아내가 차려준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했다. 저녁 식사 후 진이의 교통사고를 화재거리로 아내와 얘기를 나누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열한시였다.

 “무슨 전화일까? 이 늦은 밤에”

 왠지 가슴이 쿵딱 뛰기 시작했다. 전화벨은 더 크게 울렸다.

                                                                              -5-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백 성민 씨 댁이죠? 여긴 통영 경찰섭니다.”

 그는 ‘통영경찰서’라는 말에 마치 큰 죄를 짓고 도주하는 도망자처럼 불길함과 당황함에 고동의 울림의 커지는 소리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뭐- 좀 조사할 것이 있어서요, 다름이 아니라 박진이 학생 아시죠?”
  “예, 저희 학생입니다만….”

 통화중에 그의 고동의 울림은 이젠 큰 불길한 예감의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뱃고동의 울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실은 박진이 학생 아버님이 저희 경찰서 강력계 반장님 이십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그의 전화기를 든 손은 힘이 들어가 뱃고동의 울림을 채찍질하는 말 탄 기수의 손이었다.

  “백 성민씨, 오늘 있었던 박진이 학생 교통사고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조사 할까? 하는    데 잠깐 서에 와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말입니까?”
  “가능하시다면 지금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그는 긴장된 목소리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어 짧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죠, 그런데 전화상으로는 안 되겠습니까?”
  “아니요, 직접 나오시는 게 더 좋으실 것 같은데….”

 그는 마치 어릴 적에 산에 친구들과 소에게 풀 먹이려 갔다가 비에 흠뻑 젖어 덜덜덜 떨었던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을 의식하지 못 할 만큼 얼굴의 표정이 상기되어있었다.

  “태민 아빠, 왜 그래요?”
  “……”
  “무슨 전화예요?”
  “경찰서래”
  “경찰서에서 왜?”
  “진이 일 때문에….”
  “왜요?, 괜찮다고 했잖아”

                                                                            -6-
 그녀의 목소리는 답답하다는 듯 그의 입술을 재촉했다.

  “나도 같이 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진이 일이지만 또 직접적인 과실은 아니지만 학원을 운영하는 그로서는 도의적인 책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경찰서에 가게 되면 그는 원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그를 아내와의 동행에 대해 내키지 않게 만들었다. ‘너무 소심해서 일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자기의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그런 부분들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다. 갈등의 시간과 씨름하던 중 또 한 번의 전화벨이 울렸다.

  “백 성민입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여보세요? 아…, 안녕 하세요? 원장님, 저 기억 하시죠? 아까 병원에서 원장님을 잠시    뵈었던….”

 전화기에서 울려오는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병원에서 만난 그 사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오늘 병원에서 난리를 피우며 고함을 지르던 그런 분위기하곤 영 딴판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갑자기 안보이시던데?”

 너무나도 딴 사람의 목소리였다. 병원을 들고 갈 듯 고래고래 소리치며 그에게 협박까지 하던 그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무슨 수를 또 쓰려고 그러는 것 아닌지?’라는 불길한 생각에서 그는 ‘이번만큼은 단호하게 대처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하신 용건이 뭐죠?”
  “아깐 정말 제가 실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한 것 같더라고요.
  제 성격이 워낙 급해서 말이죠, 무슨 일이 생기면 앞뒤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저의 큰    단점입니다.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 드리게 된 것    은 제가 경솔하게 행동했던 것에 대해 사과도 드리고 싶고 그리고……, 예…… 저……원    장님께 부탁드릴 것도 있고 해서…….”
  “무슨 부탁이죠?”
  “그게 말이죠, 일이 참 이상하게 꼬였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그는 사내의 행동으로 뭔가(?)를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경찰서에서 온 전화와 틀림없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을….

                                                                          -7-
  “저기 원장님, 사실은 저도 따지고 보면 정에 약한 사람이거든요, 우리는 남 아프게 하는    일은 절대로 못 합니다. 아니 그리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 씩 실수 안하는 사    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에 실수 한번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죠, 안 그래요? 그래서 말씀인데 우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저를 위해서 유리한 쪽으로 진술을 해주셨으면 해서요,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제가    지금 경찰서에 와 있거든요, 원장님, 한번만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왜 그 쪽을 위해 진술을 해야 하죠? 아깐 아무 책임 없다고 자신 하셨잖아요. 그리    고 저는 그 사고의 내용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라서 거기를 위해서 진술 할 수 있는 증인    이 못 된다는 걸 잘 아실 텐데요, 저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책임을 감당해    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게 옳은 게 아닐까요?”
  “그래도 서로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게 서로의 신상에도 좋을 것 같은데….”
  “알아서 하십시오, 그리고 전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목격자가 아닙니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흥 어디 두고 봅시다, 그래도 나는 원장님을 생각해서 좋게    매듭짓자고 드린 말씀인데 이렇게 성의 없게 나오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요, 나에게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사내는 정말 뻔뻔스러운 몇 개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자였다, 전화기를 통해 그 사내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왠지 그 사내에 대해 불길함보다는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금방 이랬다 저랬다하는 모습이 변화무쌍한 까멜레온 같기도 하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영리함과 처세술의 표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니 입안이 씁쓸해짐을 느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세상을 향한 한숨이었을까? 아니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평이었을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한숨과 함께 묘한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말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다리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그를 참고인으로 부르는 거였지만 그는 가기가 싫어졌다. 아니 포기하고 싶었다. 모든 일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자로 재듯 자기의 이익을 따져가며 ‘내가 옳니? 네가 틀리니?’ 하는 논리와 반박으로 혈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그에게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는지 모른다.

  “나 경찰서에 안가, 아니 못 가”
  “여보, 그러다가 당신 괜히 오해받고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지 말고 나하고 같이 갔    다 옵시다.”
  “가려면 당신 혼자 가, 난 이제 안 갈 거야, 정말 그 곳에 가기 싫어, 겁이 나서가 아니라    그냥 싫어”

 그와 그의 아내는 아파트 베란다에 놓여 진 테이블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석을 박아 놓은 듯 저마다의 빛을 자랑하는 별들은 잘 익은 가을의 과일처럼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한 동안 그들은 창가에서 하늘의 무수한 과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 한 번의 전화벨이 그들의 정적을 깼다.

  “여보세요?”
                                                                        -8-
  “혹시 백 성민 씨 댁 맞습니까?”
  “예, 맞기는 한데… 누구시죠?”
 
 그의 목소리는 긴장한 듯 사무적이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눈과 눈 사이에 깊은 골이 파여 더욱 그래보였다.

  “백 성민 씨, 아니 원장님, 저 진이 아빠입니다.”
  “아-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많이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걱정 끼쳐드려서…, 제가    책임이 컵니다, 아버님.”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저는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제가 원장님께 전화 드린 것은 오늘 일 뿐만 아니라 전부터 많이 느꼈던 겁니다. 사실은    우리 진이가 오래전부터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었죠, 말더듬증이 심했습니다. 자기 마음속    에 있는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어려서부터 성격이 우울하고 짜증을 잘 내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진이의 성격이 많이 밝아져서 말더듬증세가 사라졌다는 거지요. 지금은 얼    마나 명라하고 귀여움을 많이 떠는지 정말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나중에야 아내로부터 들    은 얘기지만 진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 정말 신기하게 그 증세가 없어지고 마음을    잘 표현하게 되었고 짜증내는 것 보다 웃는 모습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듣고 너무나 감사해서 언제 꼭 한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워낙 일    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인지 뜻대로 안되지 뭡니까. 진작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    렇게 늦게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아! 그러셨군요, 저는 진이에게 그런 증세가 있었다는 걸 미처 몰랐는데…, 진이가 학원    에 다닌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 오던 날부터 유난히 저와 제 집사람을 많이 따랐답    니다. 그리고 워낙 명랑해서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정    말 뜻밖입니다.”
  “저로서는 원장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꼭 제가 원장님께 감사의 표시로 부족하지    만 저희 가족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떠신지?”
  “괜찮습니다, 꼭 그렇게 안하셔도 됩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꼭 그렇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딸아이의 변화가 우리 집의 행복의    동기가 되었거든요,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이거 하는 수 없군요, 잘 알겠습니다.”
  “아참, 조금 전에 우리 직원이 전화 드린 내용 말입니다. 그거 다름이 아니고 오늘 진이    사고 관계로 사고 차량 차주가 고발을 했었습니다.”
  “누굴 말입니까?”
  “원장님을 말입니다. 그 사람 말로는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경찰에 와서는 고발했다    는 겁니다. 자기 말에 의하면 원장님이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해서 자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첫 눈에 알아 봤죠. 아니나 다를까 확인해보았더니  그 사람이 주장한    것이 다 거짓이었습니다. 진이 엄마를 통해서 또 병원 관계자들 얘기를 통해서도 충분한    증거가 되고 무엇보다도 사고 현장에서 사고를 내고도 오히려 아이에게 화를 냈다고 하더    군요, 더구나 원장님께 한 행동을 들었을 때는 이 놈 가만 두면 안 되겠다 결심 했죠, 지 
                                                                      -9-
  금쯤 조사계에서 조사받고 있을 겁니다. 원장님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동안 우리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신 것만 봐도 그렇고, 오늘 사고 후 병원에서도 정말 친절하고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듣고 생각했을 때 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꼭 식사 거절하지 마  십시오,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기다릴게요.”

 그는 전화를 끊은 다음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아내의 표정이 통화내용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밝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이 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보다 왠지 그의 깊은 심중 밑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참 사람이 때로는 저렇게 추할수도 있겠구나!’ 그는 자기를 고발했던 그 사내에 대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너무나 실감 있게 다가왔다.

 “자기의 과실을 타인에게 돌리고자 했던 사내의 모습이 혹시 내 속에도 있는 것은 아닐    까?”

 그는 침실 창가의 커튼을 열고 밤하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의 밤하늘에는 익어가는 수많은 과일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하며 그의 생각을 일축했다.

  “아직도 세상은 행복을 느끼며 살기에 좋은 곳이 랍니다. 좋은 다수를 생각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조그만 한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것은 비록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답니다. 당신이 거짓 없는 웃음과 진실을 행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타인    의 억지와 바르지 않은 생각이 순리를 역행하고자 제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그것은 허    공을 치는 무의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결심한 듯 그들에게 씽긋 웃음의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진이 아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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