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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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
김혜련
어둠의 하복부가 가려워
거친 바위에 피가 나도록
문질러대고 싶을 때
나라고 하는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냉정하지만 숙련된 컴퓨터기사가 되고 싶다.
세월의 이삭을 주워야 하는
가볍지 않은 나이 탓인지
턱 끝에 숨이 차듯 속도는 느려터지고
돌부리에 걸리듯 삐꺽거리는 오류는
콧등에 땀을 구르게 하는
신통한 재주까지 데리고 왔다
고지혈증 닮은 바이러스는 췌장 밑바닥까지
촘촘히 박혀 있는 붉은 장미다발을 이루고
불량 섹터는 어느 새 백팔 개를
훌쩍 넘겨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어둠의 하복부가 무거워
노란 똥물까지 온 방에 가득 넘치도록
쏟아내고 싶을 때
나라고 하는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비정하지만 능숙한 컴퓨터기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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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경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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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만 있다면
저도 저의 어머니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 새롭게 태어 나고
싶습니다
깊은 글 앞에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김혜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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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돼죠. 컴퓨터처럼 초기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다보니 본의아니게 각종 바이러스, 불량섹터들이 덕지덕지 끼인 몸과 마음으로 변하였고, 중년기에 접어든 지금 포맷의 적기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