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점상 단속 >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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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충신동, 그곳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댁이 있던 곳이다. 월탄 박종화 소설가의 기와집 대문을 지나 벽을 따라 모퉁이만 돌면 바로 외할아버지 댁이었다. 충신동이라고는 해도 나 역시 어린 시절 이승만 박사 집 근처 종로구 이화동에 살았으니, 키 작은 어린 나이에도 뛰어가면 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기에 아침 먹고 뛰어가고, 점심 먹다가도 달려가고, 저녁 먹고도 이모하고 놀고 싶어 뜀박질하던 곳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안 나지만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외할머니를 따라서 충신동 시장엘 갔다. 한두 번 따라갔던 시장도 아니 건만, 그날이 기억되는 건 다름 아닌 노점상 단속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처음 목격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할머니 치마꼬리를 붙잡고 들어서며, 오늘은 뭘 맛있는 걸 사주실까 잔뜩 기대를 하며 들어서던 시장 입구에, 느닷없이 용달차가 오더니, 거리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리어카들을 용달차로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그 단속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에 팔에는 저승사자같은 모습의 단속반 완장이라는 걸 차고 있었다.
노점상들이 울며불며 매달리며 리어카만이라도 돌려달라며 차에 매달리며 애걸하는 분들을 발로 차다시피 집어 던지며 또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단속반원들이 들이닥친 모습을 본 노점상들은 거리에 펼쳐놓았던 자신들의 물건을 부리나케 담아서 도망을 치고 있었지만, 단속반원들은 호루라기를 힘껏 불어대며 그 분들을 향해 치타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리어카 장사하는 분들이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구랑 싸운 것도 아니다. 그 분들이 뭘 잘 못했는지, 난 그런 건 모른다. 다만 내가 그날 생각했던 건, 나쁜 아저씨들이 장사하는 분들의 물건을 빼앗아 가는 걸로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혹시라도 내가 놀랄까봐 보지 말라며 내 눈을 가려주셨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모든 것을 다 보고난 후의 상황이었다. 너무 무섭고 두렵고, 빼앗긴 리어카와 물건들이 내 물건 네 물건 구분 없이 용달차 위에 뒤섞여 뒹구는 동안 나의 머릿속 또한 온갖 생각들로 가득했다. 어린 나이에도 그 분들이 너무 가여웠고, 뒷일이 어떻게 될지 가슴 졸이면서도 도둑고양이보다도 늑대보다도 넝마주이보다도 더 나쁜 사람으로 비쳐졌던 건 단속 반원들을 얼마나 노려보았는지 모른다. 내가 당한 일도 아니었지만, 리어카와 함께 사랑하는 자식들 입에도 차마 넣어주지 못했을 과일들이 나뒹굴던 그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엔 생생하다. 사실 그날 내가 받은 충격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단속을 당한 노점상들보다도 내 가슴속에 들어앉은 시간이 더 길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강산이 세 번도 넘게 변한 세월이 흘렀고, 지금 충신동 시장은 대로로 변했고, 단속반원들에 의해 집어던져지던 리어카 대신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다. 그 옛날 그 자리에서 노점상을 하던 분들도 지금쯤은 노점상 일에서 손을 떼었거나, 이승에서의 고된 삶을 안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도 거리에는 꾸준히 노점상들이 세대교체를 하면서 들어서고 있고, 단속반원들 또한 여전히 두꺼비 파리 낚아채 듯 빼앗아 가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해도, 과연 내가 거리로 나가서 노점상을 할 용기가 생길까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이다. 직업에 귀천 때문은 아니다. 그저 숙기 부족한 내가 거리로 나설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뿐이다. 그분들이 처음 거리로 나설 때는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까 싶다. 사춘기 자식들이 행여 친구들에게 책이라도 잡히지 않을까 고심도 했을 것이고, 학창시절 나보다 못했던 친구라도 마주치면 어떨까하는 고민들은 안 해봤을까? 그분들로서는 자식들하고 먹고 사는 일 앞에서 낸 큰 용기일 텐데, 우리 사회가 짓밟을 권리가 정말 있는 걸까? 거리가 지저분해서 깨끗한 모습으로 정화시키고자 하는 단속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속사정은 세금 안내고 장사하는 걸 단속하기 위함이라고 했던가?
개인적으로는 노점상이 있어서 불편하기 보다는 가끔씩 애용할 수 있는 고마움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거리를 가다 때론 붕어빵도 먹고 싶고, 군고구마도 사먹고 싶다. 배가 출출할 때는 손쉽게 사다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누군가 그랬다. 자장면을 쇠 젓가락으로 먹는 것처럼 세상에 맛없는 것도 없다고 말이다. 자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붕어빵, 호떡을 정식 가게에서 판다고 하면? 글쎄?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맛이 날까 싶다. 군고구마를 인테리어가 잘 된 가게에서 판다면? 사먹고 싶어질까? 추운 날, 길가에 서서 떡볶이랑 오뎅 국물 한 컵 먹는 맛을 단속반원들은 알고 있을까?
그 사람들이야 또 윗분들의 지시가 있고,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단속반원 자식들은 거리에서 붕어빵 안 사먹나 모르겠다. 특히나 인사동은 형식을 갖춘 가게들보다 노점상들이 차려놓은 작은 가판대에서의 볼거리가 제법 많은 곳인데 말이다. 오늘 인사동의 단속하는 장면을 나대신 또 다른 어린 소녀가 지켜봤을지 모른다. 그 소녀가 자라 중년이 된 시간에는 생계형 노점상들이 사라져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있으려나?
노점상 단속으로 거리가 깨끗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생계 터를 잃은 노점상들의 가슴속에 드리운 뜨거운 숯 검둥이는 누가 말끔히 정화시켜줄까! 온밤 시리도록 하얀 눈이 쌓이면 데인 상처가 감춰질래나?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웅크리고 잔다는데, 어찌 된 세상이 때린 사람은 다리 뻗고 자고, 맞은 사람들이 웅크리며 잠드는 세상이 되어가는 걸까!
늘 하는 단속이라 단속반원들이 노점상들을 대하는 마음에 ‘얼음땡’ 풀리지 않는 마술이라도 걸려버린 걸까? 정말 단속반원들은 두 다리를 뻗고 잠들까? 아니면 웅크리고 잠들까? 아, 이래서 선인들이 직업은 가려서 가져야 한다고 했던가 보다.
댓글목록
朴明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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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나보다 못했던 친구라도 마주치면 어떨까하는 고민들은 안 해봤을까? 그분들로서는 자식들하고 먹고 사는 일 앞에서 낸 큰 용기일 텐데, 우리 사회가 짓밟을 권리가 정말 있는 걸까? 거리가 지저분해서 깨끗한 모습으로 정화시키고자 하는 단속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속사정은 세금 안내고 장사하는 걸 단속하기 위함이라고 했던가?
~ ㅎㅎㅎ 요 글을 복사하고 댓글 달려고 하니 사라지고...이제 나타나는 군요....
고운 미소 아름다운 가을 되십시오...잘 읽었습니다^^
손근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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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도 하나의 문화인데. 토요일에 인사동에 다녀 왔었는데. 저도 어제 뉴스를 보고 의아해 했습니다.
최승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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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은 그런데로 낭낭이 잇는데...
아름다운 계절 건강하세요
현항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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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아니 어쩌면 풀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갭(GAP)이고,
향수와 문화와 공평과 형평과의 끝임없는 논쟁일 겁입니다.
직업상, 저승사자같은 완장맨들을 마냥 무서워하고, 미워할 수 없는 마음이고,
전자분들을 입장을 대변할 수 없는 마음이 왠지 씁쓸합니다.
퇴근길, 이은영 작가님의 생각하게 하는 작품속에 쉬어 갑니다.
신의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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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군 제대한 72년 겨울, 청량리 어느 골목에서
리어카로 과일 노점상을 한 달 정도 했었지요.
한 달도 채 안돼 리어카까지 팔아야하는 밑지는 장사였지만...
열혈의 피끓는 젊음
그렇게 인생수업을 하며
가슴앓이를 하며...
전 * 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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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들의 생존권도 보장되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올런지.....
늘, 감동적인 이야기에 심취합니다.
이은영 작가님, 가을이 깊어 갑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이은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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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가 나도록 급하게 쓰고,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나간 글에
이렇게나 귀한 댓글들을 달아주셨으니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하는 건지요.
박명춘 시인님,
손근호 발행인님,
최승연 시인님,
현황석 시인님, ^^*
신의식 시인님,
전 * 온 시인님~~,
새벽으로 향해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이 시간까지 있었으며
무엇을 위해 이 나이에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
여러 분들의 댓글을 통해 사못 겸손한 반성을 해봅니다. ^^*
새 아침 활기차게 시작하시길 바라며~~,
모과차, 유자차, 키위쥬스, 커피우유, 식혜, 모카 커피와 도너츠 한 바구니 놓아두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
이월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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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이라면 정부에서도 인정하는 문화의 거리 아닌가요? 노점상도 한몫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봅니다.
저렇게 일시적인, 보여주기식으로 통제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어린 날 눈 앞에서 벌어졌을 광경이 읽는 사람도 가슴 아프게 만드는군요. 재주 있으신 이은영 작가님 덕분이지요..
-----어제도 글쎄, 댓글을 쓰는데 아래 리스트에서 수필만 쏙 빠져나갔지 뭐예요? 저만 그런가요? 메인으로 가서 다시 리프레시를
안하면 댓글을 못달게 되는거지요.. 그래서 종종 놓친답니다..
-----늘 좋은 글 뵙습니다. 감사드리구요,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