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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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냉장고
김혜련
어떤 음식물이든 어떤 식재료든
거절하는 법 없이
잘도 받아먹던 식신계의 절대지존 그가
이틀째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강력접착제로 붙인 듯
입을 봉하고 침묵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것뿐이랴
365일 잠도 없이 감귤색 눈을 뜨고
뜨거운 보리차조차
얼음으로 만들던 초인적 그가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벌써 두 시간째
검은 콩만 한 땀을 똑똑 떨어뜨리며
그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을 주무르고
얼마 전 배운 교사심폐소생술 연수를 재현하며
심장을 마사지해 봐도
그는 평소와 다르게 심장이 따뜻한 채로
숨을 쉬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31도가 넘는 이 살인마 같은 여름에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른 채
당신은 죽어 있는가.
당신 위장 속에 들어 있는
귀한 아들 먹일 보양식 한우는
벌써 수채 냄새를 풍기고
안토시아닌 왕비 오디는
보라색 드레스가 젖도록 온몸으로 울고 있는데
당신은 왜 뜨겁게 죽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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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경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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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도 사람처럼 오래되면
생로병사의 길을 걸어 갑니다
모든 이치가 ...
고맙습니다
고장 난 냉장고
김석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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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수명 .... 약10년쯤 될것입니다
이 무더운날에 주인을 두고 홀로 야속하게 머나먼 휴가를 떠났네요
아쉽지만 이별을 하고 새로 장만하셔야지요..
-감사합니다
김혜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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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숙 시인님, 김석범 시인님, 항상 감사합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하필이면 시원함을 선물해 주는 냉장고 고장이네요. 그래서 새삼스럽게 냉장고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