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宋句里집 이야기> ㅡ 19 "순"과 宋句里 산장에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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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목원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2건 조회 1,123회 작성일 2007-06-15 08:01본문
소설 연재 <宋句里집 이야기> ㅡ 19 "순"과 宋句里 산장에서
"순"과 宋句里 산장에서
닭이 우는 새벽이었다. "순"이 깨일까 조용히 침상에서 빠져나와 옷을 입고
밖을 나섰다. 벌써 장인과 장모님은 일어나시어 장모님은 아침식사 준비를,
장인은 닭장에 가셔서 먹이와 물을 주시고 계셨다. 그 곁에 온 宋句里에게
쇠사슬로 땅 밑까지 단단히 지어진 밑을 손으로 지적하시면서 말씀 하셨다.
그곳에는 직경 5cm쯤 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장인 = 엊저녁 다시 족제비에게 피해를 보았네.
하시면서 돌로 그 구멍을 막는 것이었다.
宋句里 = 매일 이렇습니까?
장인 = 매일은 아니나 자주 해를 끼치니 재미가 그리 없네. 하셨다. 닭장은 앞이
넓이가 약 6m 옆의 거리가 약 30m의 크기로 3군데 있어 그 안에 붉은 토종닭
200마리쯤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제일 큰놈을 한 마리 붙잡고 나오셨다.
그 닭은 사위와 딸의 점심때 요리로 쓰신다는 것이라 하여 宋句里는 매우 송구스러워했다.
시냇물이 너무도 맑아 그 줄거리를 찾아 헐레 펄떡이며 오르다 보니 "순"이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순" = 아이 머 혼자만 일어나서, 하면서 살짝 꼬집는다.
宋句里 = 피곤한 줄 알고 좀 더 재우려고 혼자 나왔지, 손잡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둘이서
오르 내렸다. 저 멀리 아래쪽에서 장모님이 부르고 계셨다.
아침 식사 때에"순" 의 곧 밑 남동생이 제천에 사는 딴 집에서 宋句里들에 인사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5남매 중 위가 언니 두 번째가 "순" 세 번째가 남동생, 다음에
서울에 있는 패션모델을 하는 여동생, 제일 밑이, 미술관에 근무하는 여동생 , 들이다. 남자라곤
오늘 보는 이 처남 하나뿐이다. 장인이 서로 소개하여 주셨다. 3살 난 조카딸이 그
아빠의 무릎에 앉아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宋句里는 그 평화스런 아빠와 여조카의 모습을 보면서(우리도 빨리 저렇게
귀여운 아이를 낳아 무릎에 앉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혼자 상상하고
있을 때, 장모님이 곁에서 묻는 것이었다.
장모 = 宋句里 자네는 애를 낳으면 딸이 좋은가? 아들이 좋은가?
宋句里 = 글쎄요 하나님의 뜻에 맞기겠습니다. 장모는 뒤이어
장모 = 자네는 장남이라 면서 ,
宋句里 = 네, 장남입니다.
장모 = 보아야 할 일은 어떻게, 제사 그 밖에 장남으로서의 명분이라네.
宋句里 = 저의들도 5 남매인데, 장남인 저가 일본에 큰딸이 미국에 시집가고
둘째 딸이 국내에 있고 차남이 제주에 있으며 끝의 남동생이 충남 안면도
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들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서둘러 준 애가 끝에
놈입니다. 장남의 하여야 하는 일과 처사는 일절 차남에게 이양하였습니다.
하여야 할 선조님들의 제사는 많고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없고 하여 제가 일본에서
얼마씩 송금하여 어머니가 그것을 생활에 쓰지 않고 모아 밭을 살만하면 사서 지금은 농사일
만으로도 살게끔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옛날 제주에 밀감이 그리 많지 않은 때에, 옛날엔
서귀포의 정하여진 곳 이외에는 밀감이 없었습니다. 약 30년 전에 아버지가
돌담을 높이 쌓으면서, 밀감의 연구에 몰두하여 서귀포와는 다른 모종으로 개종하여,
처음엔 남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보리나 고구마를 주로 경작하던 고장이어서, 그때의
그 성공은, 옆 밭이 아버지 따라 밀감나무 심고, 하더니 이웃과 동내는 물론, 딴 지방에
전파되어 지금은 제주의 둘레가 온통 밀감 농원이 되었습니다. 그 고생한 탓인지
50대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계실 때부터 차남에게 저의 장남의 여건 들을 이양함에 동의
하였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아버지의 제사는 제주의 둘째 동생이 맡아서 지내고 있습니다.
많지않으나마 물질적인 터전을 준비하여 주었습니다.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유교적인 풍습은 직히고 있습니다.
장인과 장모님과 처남은 끝까지 주위 깊게 듣고 있었다.
장모님 = 잘 알았네 그런데 제주 어머님 집으로 인사는 언제 가지?
宋句里 = 네, 12월 그믐에 인사를 드리고 신혼여행을 그곳으로 할 예정입니다.
장모님 = 그럼 안심하겠네. 당연히 궁금하고 중요한 내용은 대강 전부 듣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장인이 입을 열었다.
장인 = 자네의 종교는 무엇인가?
宋句里 = 네, 20대까지는 그리스도교인 장로회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머님은
불교에 전향하여 지금은 제주에서 절에 자주 다니시고 계신다 하고 있습니다.
돌아 가신 아버지는 유교 학자 같은 사람이 어서 어렸을 때에는 공자와 맹
그 밖의 漢 학자들의 말로 하여 그 교훈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가 잠시 있던 곳이
이슬람 지역에서 코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왔습니다.
"순"과 宋句里 산장에서
닭이 우는 새벽이었다. "순"이 깨일까 조용히 침상에서 빠져나와 옷을 입고
밖을 나섰다. 벌써 장인과 장모님은 일어나시어 장모님은 아침식사 준비를,
장인은 닭장에 가셔서 먹이와 물을 주시고 계셨다. 그 곁에 온 宋句里에게
쇠사슬로 땅 밑까지 단단히 지어진 밑을 손으로 지적하시면서 말씀 하셨다.
그곳에는 직경 5cm쯤 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장인 = 엊저녁 다시 족제비에게 피해를 보았네.
하시면서 돌로 그 구멍을 막는 것이었다.
宋句里 = 매일 이렇습니까?
장인 = 매일은 아니나 자주 해를 끼치니 재미가 그리 없네. 하셨다. 닭장은 앞이
넓이가 약 6m 옆의 거리가 약 30m의 크기로 3군데 있어 그 안에 붉은 토종닭
200마리쯤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제일 큰놈을 한 마리 붙잡고 나오셨다.
그 닭은 사위와 딸의 점심때 요리로 쓰신다는 것이라 하여 宋句里는 매우 송구스러워했다.
시냇물이 너무도 맑아 그 줄거리를 찾아 헐레 펄떡이며 오르다 보니 "순"이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순" = 아이 머 혼자만 일어나서, 하면서 살짝 꼬집는다.
宋句里 = 피곤한 줄 알고 좀 더 재우려고 혼자 나왔지, 손잡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둘이서
오르 내렸다. 저 멀리 아래쪽에서 장모님이 부르고 계셨다.
아침 식사 때에"순" 의 곧 밑 남동생이 제천에 사는 딴 집에서 宋句里들에 인사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5남매 중 위가 언니 두 번째가 "순" 세 번째가 남동생, 다음에
서울에 있는 패션모델을 하는 여동생, 제일 밑이, 미술관에 근무하는 여동생 , 들이다. 남자라곤
오늘 보는 이 처남 하나뿐이다. 장인이 서로 소개하여 주셨다. 3살 난 조카딸이 그
아빠의 무릎에 앉아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宋句里는 그 평화스런 아빠와 여조카의 모습을 보면서(우리도 빨리 저렇게
귀여운 아이를 낳아 무릎에 앉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혼자 상상하고
있을 때, 장모님이 곁에서 묻는 것이었다.
장모 = 宋句里 자네는 애를 낳으면 딸이 좋은가? 아들이 좋은가?
宋句里 = 글쎄요 하나님의 뜻에 맞기겠습니다. 장모는 뒤이어
장모 = 자네는 장남이라 면서 ,
宋句里 = 네, 장남입니다.
장모 = 보아야 할 일은 어떻게, 제사 그 밖에 장남으로서의 명분이라네.
宋句里 = 저의들도 5 남매인데, 장남인 저가 일본에 큰딸이 미국에 시집가고
둘째 딸이 국내에 있고 차남이 제주에 있으며 끝의 남동생이 충남 안면도
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들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서둘러 준 애가 끝에
놈입니다. 장남의 하여야 하는 일과 처사는 일절 차남에게 이양하였습니다.
하여야 할 선조님들의 제사는 많고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없고 하여 제가 일본에서
얼마씩 송금하여 어머니가 그것을 생활에 쓰지 않고 모아 밭을 살만하면 사서 지금은 농사일
만으로도 살게끔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옛날 제주에 밀감이 그리 많지 않은 때에, 옛날엔
서귀포의 정하여진 곳 이외에는 밀감이 없었습니다. 약 30년 전에 아버지가
돌담을 높이 쌓으면서, 밀감의 연구에 몰두하여 서귀포와는 다른 모종으로 개종하여,
처음엔 남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보리나 고구마를 주로 경작하던 고장이어서, 그때의
그 성공은, 옆 밭이 아버지 따라 밀감나무 심고, 하더니 이웃과 동내는 물론, 딴 지방에
전파되어 지금은 제주의 둘레가 온통 밀감 농원이 되었습니다. 그 고생한 탓인지
50대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계실 때부터 차남에게 저의 장남의 여건 들을 이양함에 동의
하였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아버지의 제사는 제주의 둘째 동생이 맡아서 지내고 있습니다.
많지않으나마 물질적인 터전을 준비하여 주었습니다.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유교적인 풍습은 직히고 있습니다.
장인과 장모님과 처남은 끝까지 주위 깊게 듣고 있었다.
장모님 = 잘 알았네 그런데 제주 어머님 집으로 인사는 언제 가지?
宋句里 = 네, 12월 그믐에 인사를 드리고 신혼여행을 그곳으로 할 예정입니다.
장모님 = 그럼 안심하겠네. 당연히 궁금하고 중요한 내용은 대강 전부 듣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장인이 입을 열었다.
장인 = 자네의 종교는 무엇인가?
宋句里 = 네, 20대까지는 그리스도교인 장로회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머님은
불교에 전향하여 지금은 제주에서 절에 자주 다니시고 계신다 하고 있습니다.
돌아 가신 아버지는 유교 학자 같은 사람이 어서 어렸을 때에는 공자와 맹
그 밖의 漢 학자들의 말로 하여 그 교훈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가 잠시 있던 곳이
이슬람 지역에서 코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왔습니다.
추천4
댓글목록
전 * 온님의 댓글
전 * 온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열심히 탐독하고 있습니다.
좋은 결실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건안 하시구요.
금동건님의 댓글
금동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원진 시인님
열정에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