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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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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현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1,853회 작성일 2012-11-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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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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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빛으로 잔뜩 구겨진 하늘은 눈이라도 곧 떨굴 기세로 찬기를 내뿜고 있다.
올해 첫눈이 벌써 내리려는 건 아닐까?
해마다 눈이 오면 떠오르는 은빛 머리카락에 미소가 고왔던 그녀. 수원 끝자락에서 용인 신갈까지 40-50분간 버스를 타고 매일매일 학교에 다녔던 그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수줍음이 많고 단아했던 그녀가 십년이 지난 지금도 보고 싶고 그립다.
십년 전에 그녀는 70세가 넘은 야간학교 최고령 학생이었다. 우린 그녀를 할머니라고 하기도 아주머니라고 하기도 애매해서 왕언니라고 불렀다.
 

  흰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라고만 알고 평생을 살다가 한글을 깨우친 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왕언니네 동네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온 순간 세상이 환해지고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몇 번 버스요?” “어디 가는 차요?” 물어보지 않고 내 눈으로 글씨를 읽고 차를 골라 탈 수 있다는 현실. 그것만으로 할머닌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을 느꼈다고 하셨다. 눈이 펑펑 오던 날, 50-60세 젊은 언니들이 많이 결석을 한 날, 할머닌 거동도 불편하고 집도 가장 멀어 당연히 못 오실 거라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하얀 눈을 가득 뒤집어쓴 왕언니가 나타났다. 깜짝 놀라서 이런 날 돌아다니시면 큰일 나는데 왜 나오셨냐고 했더니 “선생님도 우리 가르치려고 돈 한 푼 안 받고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학생이 안 나오는 게 말이 됩니까?” 성례언니 열정에 눈물이 핑 돌았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4년 동안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하던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자 회의감이 느껴졌다. 나는 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면서 오래 배웠는가? 알뜰살뜰 곱게 키워 많이 가르쳐 놓으니까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께 제대로 보답도 못하고 시집을 가버렸는가? 나의 정체성에 대해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뭔가 배운 걸 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살려 야간학교 봉사를 자원했다. 그 무렵 저녁반은 대학생봉사자들로 잘 운영되었지만 오전반 담임이 없어 두 반 수업을 모두 맡고 계시던 교장선생님께서는 크게 환영해 주셨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인생의 대선배인 언니들로부터 세상을 배우며 꿀맛 같은 점심을 해먹으면서 끈끈한 정을 나누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검정고시에 합격한 분도 계셨고 얼마 안 되는 장학금에 세상 다 가진 소녀처럼 기뻐하던 숙자 언니. 해마다 김장을 하면 한통씩 놓고 가시던 명순언니. 동부아파트 앞 매표소에서 장사를 하며 열심히 책을 읽고 계시던 영례언니. 우등생이고 듬직했던 옥주언니.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토록 열망하던 공부를 해서 후회 없다던 유순언니. 강아지를 잃어버린 후 눈물로 지새우다 결석까지 했던 영애언니. 남편반대 무릅쓰고 약한 몸으로 학교를 다니던 대례언니. 아이를 데리고 나와 함께 공부하던 막둥이 흥순.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질 때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우리 아이들도 절로 공부가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배움에 목말라 한 밤중에 불을 밝히는 야학.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영혼이 있다면 이곳에서 지식을 가르치면서 인생을 배우는 삶이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비록 남보다 늦게 가고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다양한 삶의 현장을 겪어보는 것이 나를 키우는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어떤 스펙이나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보람을 느끼며 산다면 나의 정체성도 쉽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이 땅에 야간학교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배워서 남 주는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많이많이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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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현항석님의 댓글

현항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현희 작가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아주 멋진 일을 하시면서 보람도 많겠습니다.
작가님처럼 남을 위해 봉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데,,,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아름다운 사연으로 멋진 작품으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김효태님의 댓글

김효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현희 작가 반갑구려!
심오한 진리탐구에 열중하더니 이젠 결실을 보게되어 환한 웃음꽃으로 피어나는
이야기 속으로 " 배워서 남주기"란  보람과 희망봉이 되었으리라.
우리가 지난 문학기행시 절겁고 화기애애했던 시간을 함께했던 그 날을 음미하며
년말 신인상 시상식에서 재회의 그 날 만 고대 하게되는구려!
언제나 건강하고  좋은 날만 되길 기원합니다.

김석범님의 댓글

no_profile 김석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난날 하나의 깨우침에 하늘을 날듯 기쁘했던적이 있었지요..
아마 그들도 문명의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누리리라 생각듭니다
문단 시상식 및 송년 모임에서 뵙기를....

조현희님의 댓글

조현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년 연말부터 계획했던 일이 있어서 마무리하느라 작품도 문단활동도 부진했습니다.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주신 여러 선배님이 계셨기에 좋은 열매를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관심과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더 잘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연말에 뵙기를 소망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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