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봄의 손짓 원고(시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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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재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47회 작성일 2024-01-23 16:16본문
같이 가자
길섶으로 재잘대는
도랑물처럼
서로 심심하지 않게
같이 가자
엄마 닭을 따라가는
병아리들처럼
서로 길 잃지 않게
같이 가자
너와 내가 마주보는
두 눈길처럼
서로 외롭지 않게
같이 걸어가자
자꾸 그림자 밟지 말고
등 떠 밀지 말고
낮달
당신처럼 되고 싶어
그 빛나는 모습
그 황홀한 눈부심이 부러워
밤마다 밤마다
생각하다가
밤을 꼴딱 새운 아침
당신은 내 눈앞에 있었네.
빛을 잃은 내 모습
싫어 싫어
창백한 내 얼굴
부끄러워 부끄러워
등 돌리는 나에게
건네준 그 말
너무 보고 싶었다는 그 말
너무 고맙다는 그 한 마디 말
당신의 환한 하늘 길을 지나
낮달은 이제 마중 나가요
밤길 홀로 걷는 나그네를
때가 되면 다시 만나요
안녕히
나도 너무 고마웠어요.
봄비
봄비가 온다더니
집 앞에 긴 사래밭,
뒤안에 거름더미위로
봄비는 내리는데
눈 녹은 시냇가에
얼음장은 풀리는데
올라올 날을 잊으셨나
길이 질어 늦으시나
할 일은 봇물 같은데
다시 보자고 해 놓고
노을이 지는 언덕에 앉아
내 손을 꼭 잡고는
나는 천당에 너는 지옥에 있어도
다시 보자고 했지, 우리는
이 진흙더미에서 양자처럼 얽혀진
그런데 매번 전화를 해도
지금은 없는 번호라니
전부 텅 빈 말이었나
안봐도 다 안다고 잊어버렸나
햇살처럼 퍼지던 너의 체온
공기처럼 흐르던 너의 숨결
내가 볼 때마다 곁에 있겠다더니
보고 싶은 마음을 가슴속에 담아
뚜껑을 닫아두고 있으면
내 가슴속에 너가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두 입술을 꼭 다문다.
낙엽
혹시 바람났니
철없는 가을이 불렀니
낯선 골목길,
위험한 찻길을 막 쏘다니니
저녁놀처럼 빨갛게 물들 때
붙잡았어야 했는데
가슴이 답답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니
그래도 아무데나 막 딩굴지마,
너가 떠나간 빈 집
혼자 지키는 이 앙상한 밤이
나는 너무 외로워
그리고 추워
연을 날려봐
그래
단장을 끊고 등가죽을 벗겨라
뼈를 추리고
피를 말려라
세월이 밟고 지나간
바퀴자국으로 납작해진
방패연을 만들어라
그리고 날려봐라
언 하늘위로
찬바람 속에 연을 날려라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움켜쥐고
겨울 들판을 달려봐라
너가 올려다보는 하늘위에서
나는 내려다본다
텅 빈 들판너머 지평선위로
소리죽여 꿈틀대는 봄
움트는 새 봄을
방하착(放下著) ㅡ 내려놓다
큰 녀석 대학 졸업하던 날
아버지를 내려놓았다
막내 딸 결혼식 때
어머니를 내려놓았다
첫 손녀 안아본 날
나를 내려놓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역에
어두운 철길을 따라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나만 몰랐네
꿈결인가 했더니
잠결에
환한 너의 얼굴
달이었네
지금은 밤이었네
나만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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