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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늙어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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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연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9건 조회 3,791회 작성일 2005-02-25 14:3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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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늙어도 봄이다

시/강연옥



1

내 몸에 젖비린내 털며 솜털 돋아나는 날
너는 가랑비 털며 새싹 돋아났었지
그래서 알았어 너와 내가 동갑이란 걸


어머니가 하얀 손수건 가슴에 달아주었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운동장 돌담 구석에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 허공에 조그만 입을 열었었지
보리쌀 팔러 *성안으로 간 어머니 기다리는 나른한 오후
어미 품 떠난 갈매기 손짓하는 바닷가에 나가 짠물에 발 담그고
수평선에 노을 질 때면 어른만큼 부풀어오른 내 발가락 미역냄새
온 몸 미끈거리게 발라놓고 돌아오는 골목어귀 돌담에
또아리 튼 뱀 어김없이 나를 노려보곤 했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의 분 냄새 산에서 내려와 내 몸을 말리면
난 주먹을 불끈 쥐고 뛰며 울지 않았지
시꺼먼 연탄 하얗게 타도록 밤새 이성과 감성을 구분 지워
양 갈래로 땋은 머리 흰 교복 위로 내려놓은 등교 길 아침엔
벚꽃 봉오리 바라보며 분홍빛 사랑을 꿈꾸었었지


언제나 내 고난을 위안으로 행복의 싹 틔워주던
내 친구여,
내 인생의 봄이여!



2

어느 여름날 한 사내를 만났고
복숭아 꽃잎 돌로 빻아 손톱에 물들이던 소꿉장난
한 번의 소나기로 휘어진 쇠 못 녹슬어 가는 기억상실에
끊어진 내 삼류영화 필름
나이테 같은 둥근 페달 밟고 밟아 돌아와 서보면
내 굵어져 가는 허리만큼 멀어져간 나의 봄
푸르름도 향긋함도 엷어진 내 의식의 계절엔 계절이 없구나
이제는 갈 수 없는 나라인가
가뭄 들어 갈라지며 무뎌 가는 내 각질의 땅
갇혀있는 가엾은 내 영혼의 봄
이제 한 겹 한 겹 노여움 거둬들일 바람을 부르노니
비야 하루만 참아다오
눈물아 오늘 하루만 참아다오
몸뚱이에 일어선 메마른 껍데기 바람에 날리고
파도가 바위를 긁는 겨울 바다의 울음소리 잠잠해지면
나의 봄도 늙어도 봄이길 소원하오니
하나의 봄이 또 하나의 봄을 덮치는 작별의 시간
목련꽃 피고 지듯 늙어도 봄인 채 떠나가고 싶구나


봄은 늙어도 봄이다




* 성안: 제주시를 지칭하는 옛날 말

추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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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범님의 댓글

no_profile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만간 분홍빛 사랑..꽃비가 날아들즈음 봄은 말없이, 소리없이 환절기에 밀려 또다른 봄을 잉태하면서....^*^
머물다 갑니다..^*^~~ 좋은하루되시길...!! 

김성회님의 댓글

김성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계절에ㅡ 비춰진 인고의 날
그리고 숙명속 삶의 향연 깊이 감상합니다...
강시인님에 시전에 머물다 갑니다.
건필과 건안을 비옵니다..

강연옥님의 댓글

강연옥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회장님!  어제 통화 반가웠습니다.
문단 작가들의 홈이 이제야 준비 중이라 누락되는 것이 많습니다.
강병철 작가의 사진이 아직 등록이 안되었네요.
강작가님!  얼른 해드릴께요.
나무늘보님! 안녕하세요?
모두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강연옥님의 댓글

강연옥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양금희 시인님!
반갑습니다.
양시인님의 아름다운 시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여기에 많이 올려주세요.
행복한 한 주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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