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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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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5건 조회 1,855회 작성일 2006-05-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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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 정신






「해가 중천에 뜨고 남자인 듯이 보이는 문둥이가 둑 방천 양지바른 구석에 가마때기를 뒤집어쓰고 늦잠을 자고 있다. 가마때기 밖으로 헝클어진 머리가 일그러진 흉상의 이마를 덮고 있다. 마디가 잘려나간 손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와 있다. 곁을 지나던 지게를 진 농부가 침을 탁 뱉고 지나친다. 뒤 따르던 어린 딸이 겁먹으며 비켜간다.

해가 서산을 넘어 갈 즈음에 문둥이는 비틀거리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네어귀를 찾아든다. 손가락이 없는 몽땅한 손에는 시커멓게 때 묻은 바가지 하나가 위태롭게 들려있다. 눈에는 노란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 달랑거리고, 찌그러진 콧구멍에는 코딱지가 덜렁덜렁 붙어있다. 동네 함석지붕 집 담 넘어 흘러나오는 구수한 밥 냄새가 허기진 문둥이 뱃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거문고를 켜댄다.

문둥이가 대문을 확 밀치고 들어서니 똥개 한 마리가 진지를 들고 계시다가 송곳니 들이대며 물어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면서 달려든다. 그는 사력을 다해서 똥개를 사정없이 차버린다. 똥개는 깨개갱 소리를 지르며 나동그라지고 만다. 대청마루에 둘러 앉아 저녁밥을 먹고 있던 함석집 가족들이 그 모습을 쳐다본다. 주인남자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치며 삿대질을 해댄다.

문둥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루로 달려가서 반상(飯床)의 음식들을 맨손으로 바가지에 마구 쏟아 담는다. 주인남자가 주먹질·발길질로 매몰차게 두들겨 패버린다. 바가지가 마당에 나뒹굴어지고 음식들이 흙바닥에 쏟아져 흩어진다. 문둥이는 엉금엉금 기면서 쏟아진 음식찌꺼기를 입으로 가져다 넣는다. 주인은 문둥이를 끌어내어 대문 밖에 내동댕이 쳐버린다. 문둥이가 신음을 토하면서 작심을 한다. “보리밭에 숨었다가 네 자식 놈 하교 길에 잡아다가 간을 내 먹겠다고…”

다음해 유월 어느 날, 동네에선 함석집 어린 딸이 행방불명이 되고 찾느라고 야단법석이 일어난다.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다가 함석집 어린 딸을 찾지만 딸아이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고, 문둥이는 동네에서 종적을 감췄다.」



내 어린 시절 경상도 벌에 바람에 실려 떠다니는 문둥이의 처절한 숙명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중 하나이다. 그 시절 문둥병은 천형(天刑)의 저주받은 형벌로 불치로 여겨졌고 어린 아이의 간(肝)이 문둥이에게는 약이(藥餌)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어쨌든 세인들은 문둥이와 이웃하기를 꺼렸었고, 가까이 하는 것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혼자서 집도 없이 동굴이나 외진 곳 움막에서 살다가 어느 때부터 끼리끼리 모여서 살아야했다. 우린 그런 동네를 두고 ‘문둥이동네’라고 불렀고 피해서 다녔다. 문둥병에 걸리고 나면 가족도 친지도 이웃도 모두 잃어버려야 하고, 잊어버려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내 어릴 때 몇 십리 길을 걸어서 등하교를 해야 했는데 보리밭 곁을 지날 때는 겁이 나서 죽을힘을 다해 뛰어 지나거나 아예 피해 다니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문둥이가 보리밭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잡아갈 것 같아서였다. 문둥이가 어린 아이들을 보리밭 속에 눕혀놓고 간질여서 죽이고는 간을 내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경상도에서는 문둥이를 ‘보리 문둥이’로 부르는 이가 많다,
지금도 경상도 사람들은 ‘문둥이’ 또는 ‘보리 문둥이’라고 불린다.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라는 제목의 시(詩 )중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라는 구절로 보아도 보리밭과 문둥이의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경상도 출신의 사람끼리 나누는 이야기 중에도 문둥이가 자주 오른다. ‘야, 이 문디이야, 그동안 잘 지냈나?’ ‘문디이 머스마 아이가’ ‘문디이 자슥, 지랄하네’ ‘아이구, 이 문디이 봐라’ ‘문디이 새끼’ ‘문디이가 잡아가러 온데이’ … 등 이야기가 많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세인(世人)들에게는 ‘경상도 하면 문둥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고, 문둥이는 경상도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징성이 누구로부터 어떻게 부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 있는 것은 문둥이라면 몸서리치는 경상도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문둥이라 칭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즐겨 한다는 것이다. 문둥이의 처절한 삶을 알고 있기에 연민의 정으로 그들의 애한(哀恨)을 위로해 주기 위한 마음에서일까. 지난날 그들에게 시니컬하게 대했던 자신들의 모습들을 점직하게 생각해서일까. 그들의 궁극의 외로움·그리움·고통·절망…과 같은 고뇌의 심연(深淵)에서 마지막 생명의 끈을 붙잡는 그들에게 늦게나마 친구가 되어 주고 싶어서일까. 나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그 시절의 그런 모습들은 우리들 곁에서 많이 사라졌고, 한 맺힌 그들의 삶도 많이 개선되어졌다. 그들이 그 깊디깊은 구릉에서 벗어나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신 한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고 육영수 여사이시다. 그분은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 도시와 동떨어진 곳이긴 하나 끼리끼리 모여 살도록 마을을 이루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불어넣어 영농사업으로 삶의 기초를 구축하게 했고, 동네마다 문둥병전문 의원을 건립하여 전문의로 하여금 난치병을 치료하게 했다. 믿음과 신념을 위하여 교회를 세워서 신앙생활을 하게도 했다.

그런 덕분에 그들은 행려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그런대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산업의 발달로 공장건물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그들이 가진 부동산 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고 부동산의 가치도 훌쩍 뛰었다. 그들이 가진 부동산이래야 양계장 몇 동과 얼마 되지 않는 땅덩어리가 고작이었지만 양계장을 공장으로 개조하여 임대하는 일로 양계업보다도 수입이 훨씬 좋았다. 부동산 가치가 치솟기를 거듭하면서 그들은 아예 공장건물이나 빌딩을 신축하여 임대료를 올려 받거나 처분하여 부자가 되어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뿔뿔이 흩어져 동네를 떠나갔고 지금은 외지인들의 차지가 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의 현상이다.

문둥이들의 삶, 그것은 어쩌면 이 나라 강토와 민족이 외침(外侵)에 짓밟히고 일제의 억압아래서 입이 있어도 열지 못하는 한 시대의 설움과 분노를 문둥이의 삶에 비유한 은유적 표현일 것이고, 그것은 민족의 자존(自尊)과 자주(自主)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것은 경상도 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강산 곳곳마다, 우리 민족의 가슴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진 잊혀 지지 않을 우리의 아픈 정서이고 슬픈 역사이다. 우리에게 그런 문둥이 기질과 정신이 있었기에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오늘날 세계 속에 당당한 위상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이리라. 문둥이 정신이 우리의 정서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 우리의 앞날은 쇠(衰)하거나 퇴(退)함이 없이 사시장철 청청양양(靑靑洋洋)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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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양수님의 댓글

안양수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얼니시절 문둥이 놀라와 도망치던 시절이 새삼떠오릅니다.
선생님 덕분에 지난 추억의 한페이지를 다시 펼침벼 이야기 꽃을 피우봅니다

윤응섭님의 댓글

윤응섭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둥이들의 설움과 한이 어린 삶에서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셨네요..또한 그러한 아픈 정서를 오히려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모티브로 삼으셨고..우리 민족의 자주와 자존의 염원으로까지 승화시키셨네요..

최수룡님의 댓글

최수룡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릴 때 흔히 듣던 문둥이 이야기를
우리 민족의 한과 서러움, 문둥이 정신에 이르기까지
너무 멋지게 표현을 잘 하셨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갑니다.

김석범님의 댓글

no_profile 김석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숨어 있는 깊은 뜻에 감사드리면서 ...
내 자신/영혼이 문둥이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하여 봅니다....  정신적으로 모나고 ..
어딘가 불완전한 그 정신을 올바르게  선도하라는 그런 이미지로 가슴에 담고 갑니다

전광석님의 댓글

전광석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금이야 없지만 저의 어릴적 어른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무서웠던지...
오늘 새벽에 아주 의미있게 님의수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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