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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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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해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4건 조회 2,164회 작성일 2005-09-05 12:47

본문



지리산 천왕봉 산행












1.

하늘의 왕이 계신다는 지리산의 천왕봉을 가기로 작정한 것은 순전히 나의 아내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 친구들 모임에서 지리산에 가자는 연락을 받아들고 아내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보아야 할 것이란 말을 되풀이 했었고, 내가 동참하기를 은근히 권유하기 시작했었다. 내가 천왕봉을 산행하는 것은 별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아내에게는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1900미터가 넘는 고산을 산행 경력도 별로일 뿐만 아니라 건강이나 체력상태를 짚어 보아도 전혀 ‘아니올시다’였던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가고 싶어 하는 아내의 의지에 상처를 남기지 않으면서 은근히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느니, 캄캄한 야간산행으로 시작되니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없다느니, 워낙 고산이라 기후가 급작스레 변화하여 예상치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느니, 산행거리가 너무 길고 험악하여 중도에 다리가 풀릴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되고 산악이라 핸드폰도 터지지 않아서 구조요청도 할 수 없이 산귀신이 되고 말 것이라느니, 발톱이 빠지고 말 것이라느니, 일행들에게 민폐만 잔뜩 끼치게 되어 죄송해서라도 결국은 죽고 말 것이라느니‥하면서 별의별 방법으로 산행을 포기하게끔 유도해 보았으나, 결국 “남자가 그런 배짱도 없이 어찌 사회생활을 하느냐. 가기 싫으면 오지 마소, 나 혼자 다녀올라요.”라는 아내의 한마디로 나는 그 어떤 이야기도 더 할 수가 없었다.

나의 권유를 뿌리치는 아내가 야속하기도 하고 미웠지만 그렇다고 그 위험한 산행을 아내 혼자 보낼 수만은 없었다. 그래 가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아내가 천왕봉을 올라볼 수 있겠느냐. 이 땅에 남자로 태어나서 아내의 그런 소원 한 가지도 들어 줄 수 없다면 어찌 내가 남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남편자리 물러나는 것이 옳은 일이지…. 내가 가는데 설마 무슨 일 있을라고‥ 그렇게 산행은 결심되었다.


2.

19일, 그러니까 그 날이 토요일이었다.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이 퇴근하여 준비물들을 하나씩 거실 바닥에 목록 순으로 배열하고 빠진 것이 없나를 두 번 점검하고 배낭 두 개를 이용해 편리성과 중량을 감안해가면서 챙겨 넣고는 고된 산행을 위한 에너지 충전을 위하여 아내를 데리고 나가 불고기로 배를 두둑이 채웠다.

토요일 밤 10시에 집결장소로 묵직한 배낭을 둘러메고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낯익은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신청인원 45명이 모두 집결하자 버스가 출발했다. 인원이 많고 산행이 평소보다 어려운 산행이라 산행대장의 유의사항 설명도 길었다. 50대 이상이 10명 정도이고, 40대가 10명, 나머지가 30대 정도였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코스는 배부 되어진 산행지도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었다.

새벽 3시 반경 백무동계곡 입구에 도착하여 라면 한 그릇을 끓여서 밥 말아 먹고 5시 정각에 매표소를 통하여 진입하여 참샘을 거쳐 몇 시간의 산행으로 능선에 올라 능선 길을 오르고 오르면서 장터목 대피소에 다다르고, 거기서 중식을 마친 후 증산리로 하산하는 A팀과 천왕봉을 점령한 후 또 다른 증산리로의 하산 길을 택하는 B팀으로 나눈다고 했다. 진입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약 5시간 소요 예정이었고, 하산시간이 A팀이 4시간, B팀이 5시간 정도로 예상해서 총 9~10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버스 안의 조명은 소등 되었다. 산행을 위해서 수면을 취해두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3.

모두가 버스 안에서 잠이 든 이른 새벽, 버스가 갑자기 요동을 치는 소리와 버스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버스가 멈추어 선 채 운전석이 조용했다. 뒷좌석에서 ‘아이쿠~’ 아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속력을 내지 말라고 도로에 설치한 요철굴곡을 빠른 속력으로 지나침으로서 생긴 요동이었다. 다행히 옆구리가 조금 결린다는 젊은 동생 한사람 외에는 아무런 피해자가 없었다.

준비해간 대형 통에 김치라면이 끓여지고 모두는 참 맛있게 먹었다. 선두·중간·후미에 리더들을 포진시키고 헤드랜턴과 플래시를 켜들고 백무동계곡의 어둠을 가르고 진입에 들어갔다. 매표소는 닫혀 있었는데 일행들이 우르르 지나치는 소리에 매표소 직원이 나와서 입장료를 챙겼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이지만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가 내 폐부에 파고들어 오니 힘이 솟았다. 어둠 속에 콸콸 쏟아져 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도 ‘바흐’가 작곡한 ‘G선상의 아리아’ 같기도 하고, 누가 작곡한 것인지 모를 그 어떤 행진곡 같이 들렸다.

보행 중에 발아래 밤사이 떨어진 낙엽들이 일행들의 발에 짓밟혀 마지막 단말마 같은 신음을 토해댔다. 나를 포함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산을 사랑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실제로 산을 훼손시키고 짓밟는 자는 바로 산행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면 오염도, 훼손도 없을 것이고 보면 나의 이런 새벽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란 생각이다. 진정한 산악인은 그저 자신이 조금이라도 산을 오염시키거나 황폐화시키지 않으려는 마음과 실천력이 남다르다는 것일 뿐, 산을 오염시키거나 황폐화시키는 주요인자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어둠 속 발아래 밟히는 낙엽의 단말마를 들으면서 깨우친 나의 생각이다.

전체 산행 길의 20분의 1쯤 올랐을까. 지쳐서 허우적거리는 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행 초보자였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산행 초보자는 심폐기능이 약할 뿐 아니라 산행의 페이스 조절에 대한 요령도 부족하고, 체력적으로 약하다. 아무리 튼튼하고 건강하게 보여도 산행으로 단련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자신의 체력 상태를 점검해보기 위해서 산행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모두 제자리에 선 채로 숨을 고른 후 오르기를 거듭하는 동안 5시 20분가량 되어서야 하늘이 희미하게 열리기 시작했고 헤드랜턴과 플래시를 끄고도 산행이 가능해졌다. 계곡 숲이 울창함이 드러났으나 색깔을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다. 능선에 겨우 올라서고서야 비로소 날이 거의 밝았고 여기저기 비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시점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절대로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맛보기 위해서는 야간산행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아름다울 백무동계곡의 풍경을 어둠 속에 헤매고 말았으니 아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일행들이 마라톤 선수가 장거리 코스를 달리듯이 완급을 조절해가면서 골인지점까지의 체력을 안배하듯이 중간 중간에 필요한 제동을 걸었다. 선 채로 일 분 간의 휴식만 적절히 취하더라도 체력 안배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의 숨통이 트이고 몸이 산행을 위한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심호흡과 체력조절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나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4.

능선에 올라서니 반대편 산골짜기(지리산 서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고 무척 차가웠다. 백무동계곡을 오르면서 흘리던 땀방울이 금세 얼어붙는 듯했다. 능선에 올라 십 분 간의 휴식을 취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차가운 바람은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그냥 두지를 않았다. 일행들에게 별달리 이야기하지 않아도 준비한 방풍 복이나 두터운 겨울옷들을 꺼내 입고는 계속해서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능선 위의 나무들은 이미 겨울을 맞고 있었다. 나무 이파리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홍엽이 되어 뽐내다가 산자락에 나뒹굴고 있었고, 가끔 핏기 없는 나뭇잎 몇 이파리가 가지에 매달려 매서운 바람과 대항하며 발악하고 있었다. 숲에 가려 산 아래 계곡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은 발가벗은 나무들과 잡초만 가득할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다 보니 등허리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차디찬 바람이 상쾌하게 이마에 와 닿았다. 방풍 복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반복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면서 산행은 계속되었다. 추워서 걷지 아니하고 잠시라도 퍼지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날씨였다.

마침내 널따란 바위가 나타나고 바람막이도 되는 장소가 나타났다. 이때까지 나와 아내는 선두그룹이었다. 휴식을 취하지 않겠다는 일행들은 앞서 떠나고 몇 명이 휴식을 희망하기에 난 그들을 바위 위로 끌어올렸다. 방수화를 신고 오려다가 릿지화를 신고 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번 지리산 산행 내내 느꼈었다. 바위 위에서 약간의 간식들과 매실주 한 잔씩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거기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 이상의 시간을 산행해야 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다는 이야기들로 일행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면서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에 다다랐다. 바람이 살을 에는 듯이 매서웠다. 모두는 가져온 모든 의류들을 배낭에서 끄집어내어서 입고,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오돌오들 떨면서 기다려야 했다. 기진맥진한 후미 일행들이 나타나자 45명의 일행들은 겨울 매서운 바람을 등진 채 널따란 자갈마당에 둘러앉아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즐긴다는 기분은 아예 없었다. 그냥 남은 산행을 위해서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분으로 식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었다 하더라도 장시간 추위 속에 노출되어서는 아니 되기에 서둘렀다. 45명 중 27명은 세석산장을 경유하여 지름길로 하산을 결정하고 나와 아내를 포함한 나머지 18명은 천왕봉을 거쳐서 칼바위와 법계사를 경유하여 증산리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나뉘어졌다. 불행하게도 젊은 리더들이 모두 A팀으로 지름길을 택했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환상적이었다. 살아서 백 년 죽어서 백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이 인상적으로 시야에 나타났고, 운무가 활동사진처럼 걷히면서 펼쳐지는 천왕봉 산자락의 암봉과 오색단풍은 그야말로 환상의 극치였고, 오르가즘의 극치‥ 그런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탄성 “우와~~ 와~~” 소리에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 개운했다. 아내가 “너무 좋지요?”라고 던져오는 말 속에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함을 맛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고집 덕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역시 당신의 선택은 멋져!”라고 추켜올려주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갔다.


5.

통천문(通天門)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하늘을 통하는 문이었다. 천왕(天王)이 계시는 곳에 들르기 위해서는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까무러질 듯한 절경인 것도 천왕이 계시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천왕봉 봉우리에 올라서니 사방에서 세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치고 있었다. 이때 시간이 낮 12시 10분이었다.

천왕님과 만나고 뜨거운 포옹으로 그동안의 그리움을 달래고 하산을 위하여 떠날려니 천왕님이 나의 두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여기서 얼어 죽어 나랑 함께 살자, 바해! 너 같은 친구와 함께 이곳에 살면 너무 너무 재미나고 행복하겠는데…”라고 말했다. “천왕님의 마음은 알겠으나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너무 많기에 가야만 한다.”고, “훗날 함께 살 때가 있을 거”라고 말했더니 천왕님께서는 나에게 천왕의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꼬셔댔다. 내가 마음을 비운 지가 오래 전이었다고 말하고, 천왕의 자리보다 친구들과 아직은 더 정 나누며 살고 싶다고 이야기 했더니 천왕께서 품에서 서류를 꺼내곤 서명하라고 윽박질렀다. 서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흐르는 핏방울로 서명을 해주고는 천왕님과 작별을 고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血의 서약

나, 천왕은 바해가 소꿉놀이 마치고 돌아오는 날, 천왕의 자리를 바해에게 인계하고, 바해는 그때 천왕의 자리를 군말 없이 인계받아 세상을 아름답고 재미나게 꾸며나가겠다는 서약으로 여기에 손 깨물어 흘린 血의 방울로 서명합니다.

2002년 10월 20일 정오에

천왕 : 서명 (후두둑~~) 바해 : 서명(찌지직~)



6.

천왕봉에서 가끔 운무가 걷힐 때마다 내려다보이는 산줄기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골인 지점까지 험난하고도 지루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증산골에서 천왕봉으로 휘몰아쳐 오르는 비바람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길이 가파르고 바위들이 제멋대로 나뒹굴어져 있어서 하산하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기에 오로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하는데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산 길은 숲으로 뒤덮여 산자락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까마득한 마음뿐일 적에 비로소 해발 1800 지점의 개선문이란 지명과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때 시간이 오후 1시였다. 약 2시간 40분가량을 하산한 셈이었다.

일행 중 나와 아내는 어느새 제일 꼴찌가 되어 있었다. 함께 걷던 일행들이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 지는 오래 전이었다. 개선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피로로 인해 얼굴이 부어 있었다. 괜찮다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의 배낭을 벗겨서 등에 걸쳤다. 배낭 한 개가 더 내 등에 걸쳐지니 그 무게가 전해져 왔다. 아내의 무릎과 다리를 주물러 풀어주고 또다시 하산 길에 들어섰다. 어느 한 걸음도 예사로이 옮길 수 없을 정도의 바위길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위치에 도달하면 난 아내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레 유도해야 했고, 그녀의 체력상태의 변화를 감시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녀의 건강을 알기에 급작스런 호흡곤란증이 나타날까 보아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협심증, 심근경색으로 요단강을 건널 뻔했던 그녀의 병상을 나의 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지켰던 지난 일들을 난 결코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규칙적인 운동과 꾸준한 노력으로 거의 정상인에 가까울 정도로 그 동안 호전되었었고, 그녀 자신은 이번 천왕봉 산행을 통하여 자신의 건강 호전 상태를 확인해 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쓰러지는 일 없도록, 안전산행이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노력을 총동원하는 일뿐이란 생각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 혼자라면 바위 위를 사뿐사뿐 날라서 신나게 날면서 하산의 짜릿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겠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로터리 대피소에 도착하자 앞서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미인 우리를 확인하곤 그들은 먼저 떠났다. 매서운 바람과 추위 때문에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다가는 체온을 도둑맞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하산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내의 발의 착지상태를 보니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체력으로 하산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하산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난 아내의 팔을 끼고 그녀의 체중 일부를 나에게 옮기도록 했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전우의 팔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 그대로였다. 가끔 지나치는 산행객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려는 이는 없었다. 그들 자신도 무척 피로하기 때문이었다. 중간 중간 아내의 팔다리를 주물러서 근육을 풀어주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하산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중턱을 넘어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수방풍복만 입은 채 우의는 입지 않았다. 우의를 입으면 체온의 상승으로 인해 금방 지쳐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저 멀리 산 아래 인가가 시야에 나타났다. 지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내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이젠 다 왔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반대편 산기슭이 오색으로 비단결같이 물들어 있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난 그럴 때마다 선 채로 아내의 팔을 낀 채 감상토록 했다. 물론 그 아름다운 멋진 풍경을 배경한 이야기로 황홀한 웃음을 만들어 붙여야 했다. 고통으로부터 그녀를 해방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나이 들면서 이젠 좀 꾸러기 짓 좀 그만하고 점잖아지라고 질책하던 아내도 그때만은 미소로 나의 꾸러기를 즐겁게 받아 주었다.

우와~~ 드디어 증산리 매표소에 도달했다. 하산 끝이었다. 비가 철철 내리는 돌바닥 길에서 서서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를 외쳤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우르르 우리에게로 모였다. 아내가 부끄러워하며 눈을 예쁘게 흘겼다. 저 아래 주차장까지 절뚝거리는 아내를 끼고 걸어갔더니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승용차 주차장이었다. 버스전용주차장의 위치를 관리원에게 물어보니 조금만 내려가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나도 지칠 대로 지치기 시작한 지 오래였으나 아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에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치장했었다. 제기랄,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는 버스주차장이 40분이나 걸어 내려와서야 있었다.

버스 안에서 기다리던 먼저 온 일행들이 주차장 끝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우리를 보고 튀어나와 만세와 축하의 환호를 터트려 주었다. 버스에 올라서 배낭을 내리니 내 목·어깨·등허리는 꼼짝달싹 할 수가 없이 굳어져 있었고, 반대로 아내의 얼굴엔 해냈다는 만족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시계는 16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총 11시간 40분의 휴식 없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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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홍갑선님의 댓글

홍갑선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에 뭉클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천왕봉에는 올라가지 못했는데 두분이 부럽습니다.
두분 다 정말로 잊지 못할 산행이셨군요 "두분 다 정말 만세 입니다"
글을 감상 하면서 저도 지리산 천왕봉에 야간 산행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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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7 2005-09-02 5
1148 이선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84 2005-09-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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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 인간 댓글+ 6
no_profile 이윤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8 2005-09-02 12
1146 조연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8 2005-09-0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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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안 수술 댓글+ 4
no_profile 이윤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6 2005-09-02 4
1144 정영순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1419 2005-09-02 2
1143 no_profile 손근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99 2005-09-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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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반쪽 댓글+ 4
no_profile 임남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1 2005-09-0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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