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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이야기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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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홍완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1건 조회 3,281회 작성일 2008-09-07 01:25

본문

                                                                                    숨겨둔 이야기 한편

                                                                                                          목산 홍완표 2008년 9월 7일
여기, 나!
이년동안의 파란 많던
대서양의 하루하루들이 있다.
괴롭고 쓰리고 아픈 중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이 있어,
저 푸른 물위에
한점 거품이 되지 않았으리!

신이 준 운명만큼은 살다가
생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인생을 살아 왔었노라고,
속되지 않게
신 앞에 조아릴 수 있도록
살아보자.

다시 갈 그날까지...
대자대비하신 석가모니시여!
가엾은 이 한 몸에
영화를 달라고 하진 않습니다.
주어진 명대로
살다가 갈 수 있도록
앞길을 밝혀 주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거친 풍랑속이지만
부처님의 미소를 떠올리며
평온한 마음을 가다듬나이다.

1976년 6월 20일 GMT21:52 대서양에서

*부언 : 필자는 1980년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따사로운 햇살, 평온한 바다

대서양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다.
6월말이다.
7월이 오면 잊혀지지 않고 기억의 밑바닥에서 밀고나오는 일이 있다. 
한 고등학교 여학생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와 좌절에 대한 기억이다.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던 여고생이었다.
뽀얀 피부와 맑은 눈동자 단정한 단발머리, 청바지 입은 모습이 예뻤던 학생이었다.
왜 그런지 7월만 되면 초여름의 햇살과 함께
그때의 일이 마음의 한 구석을 살짝 비추고 지나간다.
기억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거의 4년이나 지난일이다.
그 일이 생각나면 언제나 아쉬움 섞인 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굳이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깊은 물속에 빠뜨린 것 같은 아쉬움이 차 올라오는 것은 왜일까? 
잠시 생각이 깊어진다. 그때의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지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 여학생을 다시 한번 꼭 만나보고 싶다.
사실 그렇게 꼭 만나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냥 만나보고 싶다.
그만큼 나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이었나 보다.
막상 지금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정말 보고 싶었다고?
아니면 네가 그럴 수 있었느냐고? 도대체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었느냐고 따지기라도 할까?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인 것을 뻔히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음 한 귀퉁이에 동아리 틀고 있는 과거의 의식에게 자꾸 속삭이고 있다. 만나보고 싶다고...
4년동안 간간히, 그리고 7월이 되면 더욱 그러한 마음이 간절해 진다.
지금은 그저 잊혀 가는 그 여학생의 상속에,
마지막 보았던 미소만이 희미하게 아른거릴 뿐인데 말이다.
그 짧은 만남이었는데, 이렇게 생각에 잡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소위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의 만남이어서 일까?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의 만남이 남녀간의 사랑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정신연령으로 볼 때
그러한 것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 때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은 고2, 나는 고3때였으니 말이다.
나는 여자가 귀한 집에서 자랐다.
오형제중에 장남이었다.
친구 중에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여학생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다.
나는 당시에 앞길의 인생이란 단어를 붙잡고,
그저 한길만 바라보며 그 목적에 집착되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월급 많이 주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목표보다 앞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성과의 만남도 대학진학도 그 후의 일이었다.
신세 편하게 이성간의 사랑타령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여학생을 이성이 아닌 동성으로 보았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앞날의 목표에 대한 집착으로 그 여학생과의 만남이 그렇게 짧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와의 단지 몇 시간만의 짧은 만남이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이 신통하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고독하고 외로운 해양생활로 인하여
그 여학생과의 만남의 과정 속 기억이 고개 들게 하는 것 같다.

여학생과의 만남조차도 우선순위를 앞서게 하지 못했던 인생의 첫걸음 준비!
애타게 바라보며 기대했던 사회의 첫걸음!
그것이 이렇게 괴로운 첫걸음이었을 줄이야...

1972년 7월, 1학기 학기말 시험기간 때였다.
평소 텅텅비던 독서실이 만원을 이루었다.
나는 그곳에서 2년 이상 있었다.
만원이 되어도 내 자리는 항상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에 독서실에 와 보니 내 자리에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자리가 만원이어서 잠시 내 자리에 앉아있으려니 하였다.
다른 학생의 자리에 잠시 앉아 있기로 하였다.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비워 주지 않았다.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자격시험 날자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공부할 것이 많이 남아 있어 한시를 아껴야 하는 때였다.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기 위해 그 여학생에게 다가 갔다.
그런데 얼마나 공부하는데 집중을 하고 있는지
다가가도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말을 걸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 왔다.
두시간이 지났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학생이 왔다.
그 시간에는 다른 빈자리가 없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공부하는 뒷통수에 대고 일어나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인기척을 내 보았지만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통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집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오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고 오면 그때야 자리가 비어 있겠지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왔는데도 여전히 그 여학생이 그대로 있었다.
더 이상 양보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여학생이 미안해 할 것 같아 자리를 비어달라고는 하지 못하였다.
대신에 “이 자리는 내 자리다. 주인이 왔으니 그만 일어나라”는 인기척을 내었다.
그리고는 그 여학생의 어깨너머로 허리를 굽혀 책꽂이에서 책을 한권 뽑아내었다.
그때 비로소 그 여학생과 처음 대면을 하게 되었다.
그 여학생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뛰었다.
예뻤다!
책을 한권 뽑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자리의 주인이 왔으니 자리를 비웠겠지 하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돌아가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화도 났다.
일분일초가 아까워 새벽 다섯시까지 밤을 새며 공부하는 중이었다.
무려 6시간이상을 그 여학생 때문에 허비하다니...
인정사정 볼 일이 아니었다.
이제 공부를 하여야 하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였다.
이 정도면 바로 자리를 비워줄 것으로 알았다.
착오였다.
자기가 옮길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예쁘지 않았으면, 더 이상은 안된다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예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데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 여자는 예쁘고 보아야 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나도 시간이 없으니 빨리 자리를 비워달라”고 중얼거리듯이 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간에 빈자리가 생길 리가 만무하였다.
할 수 없이 학교가 독서실에서 멀지 않아 학교에 가보기로 하였다.
늦은 시간인데도 문이 열려 있는 교실이 있었다.
거기서 아예 늦게까지 공부하기로 하였다.
열시 넘으면 그 여학생이 집에 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열시가 넘어 독서실로 돌아왔다.
생각한대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렇게 꽉 차서 빈자리가 없었는데 그 시간에는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었다.
그 여학생이 어느 자리에 앉았을까 궁금하여 독서실을 둘러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공부를 하고나서 였다. 
눈을 쉬고 허리운동을 하기 위해 몸을 뒤로 저쳤다.
고개 운동을 하는데 통로 건너 자리에 웬 여학생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여학생이 내 자리에 앉아있던 그 여학생 같았다.
호기심에 슬그머니 다가가 살펴보니 그 여학생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나자 그 시간이후로 공부하면서 자꾸 그 여학생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 다음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독서실에 갔는데 내 자리에 또 그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기가 막히기도 하고 오늘도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은 내심 그 여학생의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았다.
자리로 다가가 아무 말 없이 책가방을 자리 옆에 놓고 나왔다.
잠시 후에 돌아와 보니 자리가 비어 있고 그 여학생은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부터였다.
자꾸 그 여학생 얼굴이 떠올라 정신이 산만해져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제 시험일자가 얼마 남지 않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그 다음날 등교하여서도 그 여학생이 생각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이러한 심정을 말했다. 친구들이 야단이 났다.
그 친구들이 2학년때 나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몇 번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여학생이 어떻게 생겼는데 네가 관심을 갖느냐고 야단들이었다.
내가 그 여학생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였다.
모두들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편지를 써 줄테니 갔다주라는 것이었다.
편지문장을 잘 만드는 친구와 글씨를 잘 쓰는 친구가 함께 작품을 만들어 주었다.
아예 편지 봉투까지 문방구에서 재료를 사다가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그 편지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한 것을 썼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방과 후에 편지를 들고 독서실로 갔다.
공부하면서 틈틈이 그 여학생이 보이는지 눈여겨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편지를 줄 때 그 여학생에게 하라고 친구들이 알려준 말들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내어 연습했다.
사실 나는 누나나 여동생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와 친척들외의 여자들 앞에서는 언제나 쑥스러움을 느꼈다.
초등학교 5, 6학년때 운동회를 대비하여 무용연습을 하였다. 
가끔 여학생과 손을 잡을 때가 있었다.
그때에도 심장이 두근거려 그 소리가 옆 친구한테 들릴 것만 같았다.
부끄러워 얼굴이 후끈거리면 빨개지는 것이 느껴지곤 하였다.
고등학생이 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여학생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였다.
더욱이 만나자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니 보통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똑한 코와 동그란 눈, 하얗다못해 창백해 보이는 피부,
단정한 단발머리의 어여쁜 모습을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다.
설령 그 여학생이 싫다고 하여도 손해 볼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만큼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그런데 이렇게 용기를 내어 편지를 전하려는 날에 그 여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해 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이렇게 이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어여쁜 여학생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더욱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자격시험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빨리 끝장을 내어야 했다.
그 날 나는 그 여학생과 같이 있던 다른 여학생을 찾아갔다.
그리고 부탁을 하였다.
편지를 그 여학생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여학생은 의외로 자기 친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전해 주겠다고 하였다.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전해 준다고 하니 감사하였다.
다음날 내 편지를 써준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그 여학생이 질투를 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여자들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은 언제  어떻게 그렇게 여학생들의 특성까지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였다.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여학생이 보였다.
그러면서 그 여학생의 친구라는 남학생이 나를 보자고 하였다.
그 남학생은 나와 같은 학교의 다른 과 학생이었다.
그 여학생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고 하였다.
지금 같으면 교회다닌다는 소리에 기뻐하고 기뻐하였을것이다.
아마 그 여학생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불교신자라고 자처하고 있어서 교회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남학생은 그 여학생이 정말 좋은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여학생이 사는 동네에도 독서실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굳이 이 독서실로 자꾸 오려고 하여 이상히 여겼었단다.
알고 보니 나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그 여학생과 잘 사귈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했다.
싫을 이유가 없었다.
그 친구의 그러한 말과 편지도 전해 졌다고 하여 며칠 동안 그 여학생을 만나도 못 본척하였다.
사실 마음은 만나서 말도 해 보고 싶었지만 참은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그 여학생이 약속한 날자에 정말 나와 줄지 궁금해졌다.
역시 옆도 돌아보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그 여학생에게 잠시 보자고 하였다.
독서실 문앞에서 잠깐 이야기 하자고 하였다.
독서실 문앞에서 다짜고짜 이렇게 묻고 설명을 하였다.
편지를 받았느냐, 약속한 날짜에 나올수 있느냐.
약속한 날짜가 기말고사를 보고 난 후 방학 직전이었다.
“약속날짜를 그렇게 늦게 정한 것은 서로 기말고사 준비 잘 하자는 것이었다.
방학 때 만나도 되겠지만, 나는 방학 하는 다음날 시골고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방학 동안에 자격시험본고사 준비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학생이 나를 쑥맥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간신히 말을 걸고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고작 컴컴한 독서실 문 앞에서 여학생에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단 말인가!
내가 그 여학생이라고 하였어도 한심하다고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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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지금도 어느 여인과 그러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한들 별로 달라질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생이 여자에게 쑥맥인 모양이다.
이러한 쑥맥과 25년을 함께 살아오고 있는 내 처가 안쓰럽기만 하다.
지금 내가 내 처한테 여자로서 대한다는 것이 전화할 때 하는 “오 마이달링”이 고작이다.
몇 달전 후배가 결혼기념일이 되어 온 식구들을 데리고 근사한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단다.
후배를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 멋진 곳이 있었는지 몰랐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두 번이나 나한테 하였다.
그 말을 듣는 내 마음이 어떻했겠는가!
결혼기념일에 어디 여행이라도 가던지
애들과 같이 어디 근사한 곳에서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그럴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었다.
그래서 역시 현모양처구나 하고 그런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금년에는 애들도 그것을 눈치챘었는지
결혼기념일에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연극표 두장을 사왔었다.
왜 두장뿐이냐고 하였더니 우리들만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이런 기념일이라든지 행사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그간의 우리가정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둘만 다녀 오리고 하니 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늘 가족이 함께하여야 한다고 주장해 온 처가 이견이 없었다.
둘이 연극을 보러 가는 길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표정은 소풍길의 어린애와 같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정말 쑥맥이구나. 이렇게 아내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 온 쑥맥이구나.” 
여자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생활에서도 이렇게 쑥맥처럼 살아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오호라! 이를 어찌할꼬! 내 태생이 그런 모양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큰 대과 없이 이렇게 오십 평생을 살아 왔다.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것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 준 내처와 가족과
친구삼아 주고 지인이 되어 준 친구와 지인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매사와 모든 것이 감사한지 모르겠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 최상의 은혜일 것이다.
그러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감사뿐이다.
                        --------------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나가서 기다렸다.
약속장소는 행운당이라고 하는 우리 학교 옆에 있는 빵집이었다.
당시에는 대개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가 빵집이었다.
나는 여학생과 만나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전에 친구들한테 교육을 받았다.
주로 여학생과 만났을때의 매너에 대한 것이었다.
그 여학생과 만나 나눈 대화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두가지 있다.
그  여학생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전공할 과까지 말했다.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그때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졸업 후에 무슨 일을 할 계획이냐고 물어 보았다.
신문기자가 될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정말 여자로서 대단한 꿈을 가지고 있구나.
내 진로와는 거리가 먼, 어쩌면 전혀 관계가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에 크게 신경을 쓸 일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그 여학생과 만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학생은 내 계획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우선 취업을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선박에서 근무하는 통신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다.
통신장이 되면 월급을 많이 받기 때문에 돈을 모은 후에 대학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통신장이 되려면 통신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시험공부로 인하여 요즘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다른 한 가지는 다음에 만날 약속이었다.
약속날짜는 내가 제시하였다.
방학이 끝나는 이틀 전에 그날 만났던 그곳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말해 주었다.
자격시험준비 때문에 시골고향에 내려가 공부에 전념하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그 여학생이 나를 정말 고리타분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첫 만남이어서 이기도 하였겠지만,
여학생을 생전 처음 만나서 인지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졸업 후에 진로도 틀리고, 종교조차 서로 달랐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영화나 문학이나 당시에 유행하던 팝송에 대하여 잘 알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진학으로 상경한 후에 서울이랍시고는 용산과 종로3가가
내가 아는 다였으니 어디 가자고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눈치 채서 그랬는지 그 여학생은 진학이야기 말고는 거의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어렵사리 만났는데 삼십여분 정도 되어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이야 이 쑥맥이 어찌 알았겠는가!
 
이렇게 하여 방학이 끝날 무렵, 나는 큰 기대와 함께 약속장소에 갔다.
역시 30분전에 도착하였다.
그 여학생이 혹시 약속시간 전에라도 올까봐,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디어 약속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나타나지 않았다.
삼십분이 지날 때 까지만 하여도 조금 늦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문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약간 화도 났다.
이렇게 약속시간을 어기다니 괘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기만 한다면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학생이 안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런 생각이 들면 빨리 포기하고 자리를 일어나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엉덩이가 의자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만날 것을 포기하고 빵집 주인을 불러 빵 두개와 우유한잔을 시켰다.
빵집에 들어 온지 한 시간 반 동안 빵을 시키지 않았었다.
그간에 빵집 주인이 주문을 하겠느냐고 물어 볼 때마다 올 사람이 있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빵 한개는 억지로 삼켰는데 나머지 한개는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두 시간이 지났다.
결국 그 여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을 맞은 것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바람을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맛보는 시간이었다.
정말 허전하였다.
몸이 천근으로 느꺼져 일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빵집 주인에게 미안하였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빵 값을 지불하는데 주인보기가 창피하였다.
빵값을 계산하는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거스름돈조차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빵집을 나왔다.
내 처지를 다 아는 빵집 주인이 등 뒤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빵집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다.
2미터정도도 안되는 빵집의 윈도우를 벗어나는데 천년이나 걸리는 것 같았다.
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이런 처량한 모습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 쓰고 땅만 바라보고 걸었다.
바람 맞아 본 사람만이 그 심정을 알 것이다.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바람을 맞힌 것일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약속날짜를 잘 못 알고 있었거나 잊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궁금하였다.
바람 맞은 사실을 인정하고 잊어 버려야 하는데,
현실과 생각이 함께 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하여 그 후에 독서실에 몇 번 가보았다.
독서실 관리하는 사람에게 이러 이러한 여학생이 온 적이 없었느냐고 묻기고 하였다.
그 여학생도 그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시험기간중에만 독서실에 왔던 그 학생들이 그 때에 독서실에 있을 리가 없었다.

며칠간 궁리 끝에 그 여학생과 연락을 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우리 옆집에 그 여학생이 다니는 여고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의 언니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었다.
체면불구하고 그 누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동생에게 부탁하여 그 여학생에게 내 편지를 좀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편지에는 한번 만나자는 약속날짜가 적혀 있는 것이었다.
며칠 후에 그 누나로부터 그 여학생에게 동생편에 편지를 전해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 누나가 이러한 말을 하였다.
동생이 그러는데 내가 그 여학생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나를 볼 때마다 몇 번이고 만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번에도 약속날짜에 또 안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바람을 맞으면 정말 마음이 몹시 상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이 먼젓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들어 보고 싶었다.
약속날짜가 되었다.
그 날이 되기까지 마음속에서는 나갈까 말까 수없이 갈등을 하였다.
결국 그 누나의 조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시 바람맞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는지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또다시 바람맞는 것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궁금하다.
과연 그날 그 여학생이 그 약속장소에 나왔었을까?
그 대답은 내 추억 중 풀리지 않을 영원한 숙제중의 하나로 남을 것 같다.
이렇게 별로 아름답지도 않고 별 내용도 없는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그 기억이 나를 사로잡는 것일까?
내 인생에서 최초의 이성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에서 일까?
아니면 인생최초로 바람맞은 충격때문일까?

누구든지 이러한 추억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한 때나 두 때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고
목마름의 갈증으로 괴로움을 겪게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때에 이러한 추억은
잠시 고달픈 인생의 여정을 잊게 하는 청량제가 되게 할 것이다.

70년대 초 안정된 부모님의 품을 떠났다.
내 자신의 인생호에 대한 첫 항해의 돛을 올렸다.
항구를 떠나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인생호는 거센 풍랑을 만났다.
어쩌면 그러한 풍랑은 인생의 바다에 항상 상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부모님도 내 조상들도 그러한 풍랑속에서 살아왔었고,
내가 그것을 처음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 뿐일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거센 풍랑과 성난 파도 물결과의 사투로 지친 나에게
잠시 그것을 잊게 하는 추억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

이제 그 후로 사십여년이 지났으니
얼마나 많은 추억들을 만들며 왔을까!
바쁘게 살아온 인생길이었지만,
이러한 추억들이 인생길을 풍요롭게 하였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여정 속에서 더욱 그 값진 빛을 발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린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작거나 크거나 소중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실패한 것이나 성공한 것이나 모두 버릴 수 없는 귀하고 값진 것 들입니다.
여러분의 추억들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뜨거운 여름날의 땀을 식히는 미풍처럼,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의 힌 뭉게구름처럼,
여러분의 인생 뒤안길에서 잔잔한 감동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탐험하여야 할 모험의 인생 바다는
목숨을 다하여 도전해 볼 만한 정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고 잘 간직하십시요
두 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인생바다의 항해입니다.
인생의 넓고 넓은 바다를 풍요롭고 성공적인 항해의 여행길로 만드십시요. 
인생길의 인도자가 되시고 도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깨끗하고 청순한 마음
작고 맑은 호수
인생 캠퍼스 준비
파란 물감 한 방울
고요한 호수 조우

오랜 세월 끝
호수물 속 망각
흰 뭉게구름
호수 드리워
살포시 회상
망각 속 추억

-계속-

수필치고는 꽤 길지요?
이 글은 필자가 70년대 대서양에서 경험한 2년간의 내용을 토대로 수필형식을 빌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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