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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그 가슴 저린 미학-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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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혜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2건 조회 2,852회 작성일 2008-09-24 13:07

본문

<수필>

역설 그 가슴 저린 미학
-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김혜련 

  날마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죽는다. 그렇듯 날마다 어떤 대중가요는 태어나고 또 다른 대중가요는 사라진다. 무수하게 많은 대중가요 중 내가 가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곡뿐이다. 유일하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가수 조용필의  8집 앨범에 수록된 ‘그 겨울의 찻집’이라는 대중가요이다.
  한때 나는 조용필의 열혈 팬 속된 말로 광팬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를 존경하고 그의 음악에 심취해 있지만, 그 때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 듯 빠져 있지는 않다.
  여고 시절 내 교과서의 껍질은 모두 조용필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조용필의 사진을 구하면 무조건 내게 가져다 달라고 급우들에게 홍보하고 다닐 정도였다. 덕분에 우리 학교에선 조용필의 사진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평가까지 받았다. 대형 브로마이드를 방안 곳곳에 걸어놓고 그의 노래를 듣고 그와(그의 사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행복이던 시절이었다. 수업 시간에 그의 사진을 보다 선생님께 걸려 야단을 맞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것이 그냥 무조건 좋았음에도 철부지 소녀 팬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나름대로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10가지 정도는 정리해놓고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대답해 주었다. 속없는 소녀 팬이라는 말이 자존심 상해서 나는 진정으로 그를 아끼는 꽤 수준 높은 팬임을 강조하고 다녔다.
  대학 시절 나는 그의 많은 노래 중 ‘그 겨울의 찻집’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노래의 가사 내용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고, 내가 그 노래의 화자인 것만 같아 잠이 들 때까지 이어폰을 끼고 반복적으로 들으며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다 감정에 겨워 베갯잇을 촉촉이 적신 적도 여러 번 있다.
  당시 시를 갓 배우고 한두 편 습작을 하던 시절이라 그의 노래 가사가 마치 시처럼 느껴져 비망록에 여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예쁜 글씨체를 흉내 내어 베껴 적곤 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대학 시절 나는 가슴 저린 한 토막의 사랑을 경험했다. H건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모 대학 토목공학과를 다니다 방학을 맞아 전공을 살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 잘 익은 무화과처럼 탱글탱글해 보이는 근육, 그 큰 눈이 보이지 않도록 호탕하게 웃는 모습, 정감 어린 말씨, 풀밭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손수건을 깔아주는 매너까지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 들었을까?
  나는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로 일했고, 그는 주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했다.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고 점심 때 구내식당에서 한 번 보고, 점심식사 후 풀 우거진 무덤 위에서 차를 나누어 마셨고, 퇴근 무렵 현장에서 막 돌아온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내겐 최대의 행복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떨렸지만 그에게 빠지게 된 것은 순전히 시 때문이었다. 한창 시 습작에 맛이 들어 틈만 나면 하루에도 몇 편의 시 비슷한 것을 끄적거렸다. 나는 그것을 점심시간 그 무덤(우리들은 그곳을 ‘우리들의 파라다이스’라 명했다.)에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정성스럽게 읽었고 가끔은 나의 시에 대한 소감을 말해주기까지 했다. 더욱이 나를 미치게 감동시킨 것은 항상 어김없이 나의 시를 다음 날 점심시간까지 타이핑을 해 오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사무실에서 문서작성은 주로 타자기로 했던 시절이다. 그는 사무직이 아니기 때문에 타자기를 차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 번도 빠짐없이 개발새발 끄적거린 내 시를 깔끔하게 타이핑해서 내게 선물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빈 사무실에서 그는 나의 시를 읽으며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이핑을 했으리라.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며 나는 신명이 나서 더 많은 시를 쓰곤 했다.
  아! 그런데 나는 철저히 아파야 했다. 사랑하게 되어버렸는데 그는 다름 아닌 집안의 할아버지 벌이었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나더러 도대체 어쩌라고 그는 집안의 할아버지 벌일까?
  나는 그를 보내야 했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이 아팠지만 그를 보내야 했다. 이젠 다시 시를 쓸 수 없었고 타이핑 된 시 선물도 받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 그가 운전한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다방에서 작별 의식을 치렀다. 불현듯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말이 떠올랐다.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는다. 정말 너무도 비참하게 아팠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평소보다 차분하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눈물도 목소리의 떨림도 없이 그냥 평화롭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와 나의 귀를 먹먹하게 만든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가 바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다. 그 사람만 바로 앞에 없었어도 다른 사람 따윈 개의치 않고 나는 몸부림치며 엉엉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드는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애써 태연해야 했다.
  그를 보내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수천 년의 세월처럼 멀기만 했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울면서 소리치면서 진공 상태의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이 노래의 가사 중 언제나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이다. 나는 이 부분을 ‘역설 그 가슴 저린 미학’이라 이름 붙여 본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기교 높은 역설보다 더 절절하게 가슴을 후벼 파고 울려서 감동받는다. 이 노래가 있었기에 나는 그 아픔을 정화시켰고 그 엄청난 아픔까지 다독다독 가슴 밑바닥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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