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오시는 방법(-클릭-) 회원가입은 이곳으로 클릭++^^ 시작페이지로 이름 제목 내용

환영 합니다.  회원가입 하시면 글쓰기 권한이 주어집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매번 로그인 할 필요 없습니다.

병영 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2건 조회 2,036회 작성일 2009-04-07 17:36

본문

병영 일기

       

 

                                                                       

                                                              김현길

 

  그와 나의 집은 한 담부랑 사이였고 사타구니에 대짝대기 끼고 놀던, 말 그대로 죽마고우였다. 학교도 함께 다녔고 산으로 들로 소 먹이며 땔나무도 같이 하러 다녔다. 고구마 뒤주가 있던 그의 아랫방은 우리들의 꿈의 아지트였으며, 짓궂은 장난의 모든 기획이 그의 그곳에서 다 나왔다. 그러던 우리는 어느새 군대까지도 같이 가게 되었다. 창원 39사에서 신병교육을 마치던 날 양쪽 집 어머니들은 똑같이 집에서 키우던 닭 한 마리씩 삶아서 면회를 왔다. 춘천 103보충대를 거쳐 사단까지 운 좋게 같이 가게 되었다. 출발을 앞두고 조교가 우리들을 모아놓고 하던 말. "너희들이 가는 곳은 배타고 한 시간 또 차타고  한 시간을 가게 될 것이다." 아니? 강원도 산골짝에서 무슨 노므 배를 타고 한 시간씩이나 갈 곳이 있단 말인가? 아마 조교가 우리에게 겁준다고 괜히 거짓말을 한 줄로만 알았다.

  막상 물기슭에 '소양강다목적댐'이라는 글이 새겨진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정말 우리를 태우고 갈 군용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를 저 멀리 동해바다나, 이북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닐까? 막연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밖을 내다 볼 수 없는 노예선 같은 배에다가 우리를 테우고 양구에 도착했다. 다시 미리 대기하고 있던 트럭으로 갈아타고 2사단 교육대 정문을 들어서는데, "여기 피 끓는 젊은 사자들이 잠시 깃들다 가는 곳."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피알아이" 라는 교육대 간판 글들을 읽어 보는 순간 '이젠 우리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선에 정렬! 삼선에 정렬! 하던 지긋지긋한 점호와 호안에 수류탄 호밖에 수류탄 하며, 선착순 오질게 하던 동기들이 이번에는 각 연대별로 팔려갔다. 친구와 나는 다행히 또 같은 연대 같은 중대로 가게 되었다. 이러한 행운을 신에게 감사해야 되나? 우리 둘은 서로 손을 맞잡고 좋아했다. 일곱 명의 동기들과 함께 도착한 중대막사는 어쩐 일인지 텅 비어 있었다. 행정병 한 명이 나타나더니 우리들을 연병장에 뻗쳐 놓고 다짜고짜로 빳다로 군기부터 잡았다. 그런 다음 판초우의를  깔고는 자기가 먼저 시범을 보인 후 매고 온 따불빽을 풀어 무조건 군장을 꾸리란다.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면 다시 빳다를 쳤다. 피 끓는 젊은 사자는커녕 강아지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군장을 다 꾸리고 나니 어디서 육공트럭 한 대가 험악하게 달려오더니, 우리를 짐짝처럼 싣고 '신남 칼날능선 벙커 작업장'에다 성의 없이 풀어 놓고 가버렸다. 일곱 마리 햇병아리들의 운명적인 첫 자대배치가 벙커 작업장이었다. 중대장 앞에서 바싹 쫄은 신고식을 앞산 메아리가 먼저 받았다. "명~ 받았습니다!"

 정확히 2사단 31연대 10중대, 주특기 일빵빵인 그는 3소대에 일공오인 나는 그 옆 화기소대에 배치되었다. 산비탈에 야영을 하면서 산 정상 부근에 구축하는 벙커 작업은 상상을 초월했다. 철모를 벗겨 낸 맨 하이바에 무릎, 어깨, 팔꿈치에 한 번씩 덧댄 각개복으로 갈아입고서, 현장인 고지까지 오전에 모래 한 포대 오후에 시멘트 한 포대씩을 져 올려야만 했다. 그런 힘든 일도 농촌에서 나무지게를 져본 우리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 했을 당시가 작업이 그의 끝마무리 단계여서 얼마안가 임무를 완수 하고 자대로 철수하게 되었다. 철모를 아무리 고쳐 쓰도 삐딱해졌고 무거운 군장은 자꾸만 처져 내렸다. 군대에서 해보는 첫 행군이었다. 마침 6월 6일 현충일 날이라 인근 부대에서 추념의 사이렌이 울렸고, 우리는 인제의 군축교 다리위에서 10분간 휴식하면서 6.25때 산화한 선배님들에 대한 묵념을 올렸다. 잠시 감았던 눈을 뜨고 파란 강물을 내려다보니 그만 풍덩 빠져 죽어버리고 싶었다. 물론 행군이 힘들어서였다. 그날의 행군은 뒷날 100키로 행군에 비하면 화장실 정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강원도 양구군 남면 청2리 싸가지골의 병영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한 번은 내가 영내화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고참병에게 혼이 난 그 날 밤, 칸막이가 쳐진 한 내무반이나 다름없는 3소대에 숨어들어 불침번이 잠시 졸고 있는 사이 영내화 한 켤레를 수입 잡아 보충시켰다. 다음 날 일석점호 때 당직사관에게 3소대원 한명이 지적을 받았고, 지적 받은 병사가 관등성명을 대는데, 이를 어쩌나! "네! 이병 윤태ㅇ." 바로 그였다. '관물 대 상단에 발 올리고 푸샵 백회 실시?' 실시라는 말을 복창 하고 눈물 콧물을 빼고 있는데, 아차! 그 영내화 앞부분에 '태'자라는 비표가 새겨져 있더니만... 굳이 죄책감이라기보다 나는 그 날 밤 모포 속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서히 '피 끓는 젊은 사자'로 자신도 모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수요일마다 하는 10키로 무장구보와 일 년에 두 번 하는 100키로 행군과 유격훈련도 낙오 없이 거뜬히 해냈다. 또 경례 할 때 일당백이라는 뜻이 담긴 '당백' 이라는 구호도 처음 어색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너무나 노숙하게 나왔다.

  우리도 점점 짬밥이 늘어 고참병이 되어 갔다. 추운 겨울 점호를 열외 하고 간간히 교육훈련을 빼먹는 맛으로 내가 자진해서 페치카 당번을 했었는데, 내무반 실내온도가 너무 낮다며 전 중대원들 다 모아놓고 화가 난 인사계가 '각 소대 빼당들만 지금당장 빤빠라로 집합' 한다. 마중물로 껄적 껄적 저어서 퍼 올리는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중대원들 보는 앞에서 화기소대 방열판 열이 제일 시원찮다며 시범 케이스로 나에게 물을 뒤집어 씌웠다. 그때의 수은주는 아마 -20도가 넘었을 것이다. 눈 내리는 강원도 어느 산골짝 군부대 우물가에서 차가운 우물물을 뒤집어쓰는 나보다, 처다 보던 그가 더 떨었을 것이다. 그 날 저녁 나는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여태껏 훈련 받은 것을 총 동원하여 병영 담을 훌쩍 뛰어 넘었다. 쭉 바른 참나무로 애써 만들어 놓은 민가의 고등채소 하우스골재를 죄책감이고 뭐고 우선 뜯어다가 불쏘시개로 썼다. 황토와 척척 이갠 무연탄을 훨훨 타는 참나무 불 위에 얹었다. 제 아무리 두꺼운 방열판이라 해도 벌겋게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민가의 참나무 골재 덕분에 빤빠라에 우물물을 뒤집어쓰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혹서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던 양구터널, 그 고개는 어찌 그리도 채기가 힘들든지... 가을이 되면 월동준비로 빗자루용 싸리 꺾는 사역병을 상병 이상 선착순 모집하였다. 싸가지골에서 한 짐 꺾어 오다가  '벌꿀상회' 에 들러 계란 풀어 붙인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 키고 나면 사단장도 안 부러웠다. 혹한기 훈련 마치고 좀 쉬려고 하면 호박잎사귀 만한 눈이 밤새도록 내렸다. 연병장에 쌓인 눈은 물론이고, 아흔아홉 구비 광치령 눈을 다 치우고 와서는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나는 '상호내 집' 찐빵과 더불어 젖은 군화를 말리며 숨어서 먹던 4살짜리(4홉들이) 소주는 어찌 그리도 달고 맛있던지. 친구와 나는 휴가를 가면 품앗이로 서로의 집에 들러 용돈 얻어다가 줄 요량하고 외상 달고 먹었다.

  우리는 같은 날 제대하면서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으면 다시는 강원도 쪽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명세 하던 곳. 30여년이 지난 그때 그곳이 오늘 따라 그리워지는 것은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든 때문일까? 이까짓 것! 군대생활처럼만 하면  못할 일이 없다던 그가, 중년에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불쑥 노모 혼자 살고 있는 고향집으로 아예 귀농을 했다. 옛날 같이 맨 날 붙어살지는 못해도 지난 군대 이야기 서로 맞장구쳐가며 우리는 다시 고향에서 같이 살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죽마고우와 같은 부대 한 막사에서 군 생활을 한 것은 참으로 특별한 인연일 것이다. 오늘도 급히 의논할 일이 있다며 휴대전화를 걸어 빨리 와 보란다. 가서, 단풍 곱게 드는 올 가을 쯤 '상호네집'과 '벌꿀상회'가 있던 싸가지골로 이제는 추억의 여행을 떠나보지 않겠느냐고  슬쩍 한번 물어 볼 참이다.

 

추천2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정유성님의 댓글

정유성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군에서 제대 한지가 13년이나 흘렀군요. 잊었던 군생활이 님의 글을 보며 다시 추억으로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좋은 글 즐감하고 갑니다.^^*

빈여백동인 목록

Total 46건 1 페이지
빈여백동인 목록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추천
46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6 2012-04-14 0
45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62 2012-02-23 0
44
가조도 옥녀봉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49 2011-12-23 0
43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45 2011-09-30 0
4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0 2011-02-27 0
41
연평도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65 2010-12-19 15
40
그 날 이후 댓글+ 6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1 2010-11-03 8
39
선운사 소고 댓글+ 3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4 2010-09-30 10
38
고향 선술집 댓글+ 6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96 2010-09-05 12
37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2 2010-08-31 15
36
나의 노래 댓글+ 7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55 2010-07-22 20
35
인연 댓글+ 5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9 2010-06-18 5
34
안중근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8 2010-06-04 4
33
북간도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2 2010-05-31 5
32
정체성(正體性)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5 2010-05-04 4
31
부활 댓글+ 8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1 2010-04-28 7
30
도깨비불2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4 2010-03-19 3
29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 2010-03-15 3
28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7 2010-02-18 2
27
댓글+ 3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6 2010-02-10 2
26
봄이 오면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9 2010-02-04 3
25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7 2010-01-26 4
24
옹달샘 댓글+ 1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5 2010-01-18 3
23
되창문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2 2009-12-16 4
2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6 2009-12-07 4
21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3 2009-12-03 5
20
방답꾸미 전설 댓글+ 5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0 2009-11-01 7
19
모양성牟陽城 댓글+ 5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2 2009-10-28 8
18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9 2009-09-29 4
17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8 2009-09-21 4
16
문산 형님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0 2009-08-24 5
15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7 2009-07-14 4
14
호박넝쿨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8 2009-07-02 5
13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1 2009-06-21 3
12
번외 게임 댓글+ 1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2 2009-06-12 2
11
자유 -이불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8 2009-05-24 3
10
역발상 댓글+ 4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4 2009-04-24 3
열람중
병영 일기 댓글+ 2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7 2009-04-07 2
8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8 2009-03-04 5
7 김현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0 2009-02-15 5
게시물 검색
 
[02/26] 월간 시사문단…
[08/28] 토요일 베스트…
[07/03] 7월 1일 토…
[04/28] 5윌 신작시 …
[11/09] 2022년 1…
[08/08] 9월 신작 신…
[08/08] 9월 신작 신…
[06/29] -공개- 한국…
[06/10] 2022년 ◇…
[06/10] 2022년 ◇…
 
[12/28] 김영우 시인님…
[12/25] 시사문단 20…
[09/06] 이재록 시인 …
[08/08] 이번 생은 망…
[07/21] -이번 생은 …
 
월간 시사문단   정기간행물등록번호 마포,라00597   (03924)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4길 17 사보이시티디엠씨 821호   전화 02-720-9875/2987   오시는 방법(-클릭-)
도서출판 그림과책 / 책공장 / 고양시녹음스튜디오   (10500) 고양시 덕양구 백양로 65 동도센트리움 1105호   오시는 방법(-클릭-)   munhak@sisamundan.co.kr
계좌번호 087-034702-02-012  기업은행(손호/작가명 손근호) 정기구독안내(클릭) Copyright(c) 2000~2024 시사문단(그림과책). All Rights Reserved.